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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의 TV 연출가인 캐머론이 아내 크리스틴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백인 경관이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들 부부가 탄 차와 똑같은 SUV가 강탈당했다는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탈취범들의 인상착의와는 맞지 않지만 경관은 일단 정차 명령부터 내렸다. 이들 부부의 죄목을 굳이 꼽자면 흑인이면서 고급 차를 운전한 것. 캐머론은 부유한 흑인이었다.
백인 경관은 몸수색을 한다며 부부를 나란히 세워놓고 크리스틴의 몸을 노골적으로 더듬었다. 하지만 캐머론은 백인 경관과의 마찰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극도로 모욕감을 느낀 크리스틴은 귀가 후 남편의 비겁함을 맹비난하고 캐머론은 자신이 참은 게 잘 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할리웃의 잘나가는 연출가라도 백인 경관 앞에서는 일개 흑인일 뿐이라는 현실 인식이었다.
지난 2004년 제작된 영화 ‘크래시(Crash)’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이다.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이 영화는 LA를 무대로 백인, 흑인, 히스패닉, 중동계 등 여러 인종의 인물들이 이틀 동안 겪는 일상을 담고 있다. 평소 전혀 접촉할 일 없는 낯선 사람들이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면서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고 불신하고 오해하다가 충돌하는 사건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펼쳐진다. 평온해 보이는 LA, 한 꺼풀 벗기면 바로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이다. 인종적 선입관과 인종차별이 사회 곳곳에 보일 듯 안보일 듯 퍼져 있다.
지난 한주 남가주에서는 초대형 ‘크래시’가 펼쳐졌다. 전직 LAPD 경관이 LAPD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남가주 전역이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30대 초반의 흑인 크리스토퍼 도너는 LAPD의 인종차별로 자신의 삶 자체가 공중분해 되었다며 전?현직 경관들과 그 가족 등 보복 명단을 공표하고 표적 살인에 나섰다.
중무장한 살상무기 전문가 도너의 기습공격과 경찰의 대대적 검거작전이 숨바꼭질하듯 이어진 지난 10여일 남가주는 할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의 무대 그 자체였다. 여러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도너가 화염 속에 최후를 맞으면서 광란의 살인극은 종결되었다.
스스로 죽을 것을 알면서 죽음의 벼랑으로 뛰어든 도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피해의식에 눈이 먼 복수의 화신이라는 해석이 우선 나온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부 여론이다. 그에 대한 동정론이 형성되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그를 옹호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도너를 지지한다’ ‘우리 모두가 도너’라는 주장들이다.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극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이는 것은 인종차별의 기억 때문이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에 노출되었던 경험도 도너 동정론에 가세했는데 많은 경우 피해자는 유색인종이니 결국은 인종차별이다. ‘백인 경관, 흑인 용의자’로 흑백 대립구도가 뿌리 깊은 사우스 센추럴에서는 도너를 거의 영웅시 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은 노예제도라는 원죄를 안고 있다. 흑인을 인간 취급하지 않던 역사가 인종에 대한 고질적 편견으로 남아 인종차별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든 등 성공하고 존경받는 흑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인종차별의 벽에 금이 가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의 시대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마치 추수감사절 때 대통령이 칠면조 한 마리를 사면하고 다른 수천의 칠면조들을 먹어치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해석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 사회학과의 디바 페이저 교수는 취업시장의 인종차별 연구 권위자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전과 없고 경력 탄탄한 대졸의 흑인 남성이 감옥에서 갓 나온 고졸 이하 백인 남성에 비해 취업시장에서 전혀 나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인종적 선입관의 벽은 그만큼 높다.
얼마 전 낯선 동네를 지나다 주유소에 들른 적이 있다. 차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이 모두 흑인이었다. 머리 뒤에 눈이 달린 듯 잔뜩 경계하며 개스를 넣는 내내 불안감으로 가슴이 조여드는 듯 했다. 우리 대부분의 의식 속에 있는 인종 편견의 현주소이다. 그렇게 서로를 무서워하고 그래서 과잉반응 하면서 비극적 사건들이 터진다.
인종차별은 정신적 종양 같은 것이다. 사회 조직 속에 혹은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잠재태로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암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먼저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을 들여다보아야 하겠다.(미주 한국일보 2월16일자)
<권정희:한국일보 외신부/미주 한국일보/서울대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