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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선택은 케인즈주의로의 회귀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 끝나고 나서 운동하러 체육관에 갔을 때, 이미 그의 연설은 TV를 통해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아이팟 기능을 라디오로 돌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의회 연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당초에 예고됐던 것처럼, 꽤 많은 부분이 경제, 그것도 성장동력의 확보라는 주제에 할애됐습니다. 특히 그가 초선 취임 초기부터 공약했던 것처럼 미국 내의 일자리 창출, 그것을 위한 미국 기업의 생산시설 자국내 이전에 관한 문제도 거론됐고, 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일단 연방 최저임금을 9달러로 맞추고, 적어도 최저임금이 빈곤선 이하로 내려가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연설하는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이란 사실을 모르고 듣는다면, 이게 공화당의 입장인지 민주당의 입장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초당적인 이야기들도 꽤 나왔습니다.
또 미국의 물건을 더 많이 수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공정한 무역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이제 보호무역의 기조가 분명해질 것이며, 앞으로 한국이나 여타 교역국가들에 대한 압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해질 것이라는 느낌은 분명히 들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강조됐던 자유무역이 아닌, 그 외피만을 뒤집어 쓴 보호무역의 기조가 강해진다는 것이죠.
군대를 감축하지 않고, 국경수비를 강화하면서도 불법이민자들에게는 사면 기회를 준다는, 일견 들으면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말에 의원들이 박수를 치는 것은 그만큼 히스패닉들의 정치력이 신장했다는 것의 반증으로 보였고, 특히 끝마무리를 할 즈음, 미국의 선거 시스템을 개혁해서 개표 과정을 보다 신뢰가 가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할 때는 속으로 분통이 터지며 개표 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현안들에 대면,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중을 두어 이야기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얼핏 듣기에도 원칙적인 이야기였고, 바로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번해부터 다음해까지 적어도 3만 3천명의 미군을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군을 감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겹쳐졌을 때, 그것은 다시 환태평양 동맹의 강화, 그리고 자체 미사일 방어 강화라는 이야기와 겹쳤습니다.
문득 20년 전의 일이 다시 상기됐습니다. 지난 1994년, 영변의 북한 핵 발전소에서 핵무기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플루토늄을 북한이 농축하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을 준비하고 도상연습까지 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 외교적 노력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해 봅시다. 미국이 군을 감축하지 않고 올해와 내년에 걸쳐 3만명 이상의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시킨다고 하면, 그 병력을 놀릴까요? 미국의 입장에서의 '적절한 긴장'은 늘 국지전을 전제로 합니다.
북한의 느닷없는 핵실험과 로켓 발사는 핵투발 수단이 있다는 것을 시위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 북은 미국이 앞으로 취할 전략을 어느정도 감지하고 있을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가 곧 대북 및 대중국 전력의 강화를 의미하고, 과거와는 달리 이것이 극우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현재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분쟁의 불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어느때보다도 국지전의 위협이 커질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 역시 그 불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남북이 공히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하는 상황, 그것은 한반도를 또다시 피폐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바마의 선택은 온갖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자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사안들이 그 안에 끼어들어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 솔직히 충분히 들었습니다.
문득 20년 전 한반도가 처했던, 별로 많은 사람이 실감하지 못하고 넘어간 그 위기의 순간이 생각납니다. 미국 동포들 중 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일부는 급히 모금운동을 펼쳐 워싱턴포스트 지에 반전 광고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요? 적어도,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지어야 하는것이 아닐까요? 무수한 단상들이 꼬리를 잇고 또 잇는 그런 밤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