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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의 명에 따라 조각된 비시툰 비문. 이란 중부 케르만샤에 있는 이 조각은 다리우스 왕에게 잡혀 온 주변 지역 수령들을 표현했는데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란게 얼마나 말이 안 되고 민족사 날조용어인지를 알려 줄테니 귀를 후비고 잘 들어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삼국 중에 가장 국력이 뒤쳐 졌고, 기술력도 형편없었으며, 나라는 향락에 빠져 있었다.
마한(마고한국)을 계승한 백제는 의자왕 때 멸망하였으나, 그 의자왕 조차 신라를 연거푸 물리치고 수십개(삼국사기 백제본기-의자왕 편 기록에 84개)의 성을 빼앗았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고, 수.당 200만 대군으로도 정벌하지 못하여 오늘날에도 동북공정이란 미명하에 지나국 정부가 날조를 하고 있는 고구려야 뭐 말할거 있겠는가?
그런데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건 어디까지나 당나라다. 흔히 나당 연합군이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 신라의 역할이라는 것이 당나라 병사들의 군량미나 보태주는 거 뿐이었다. 김유신이 그 군량미 배달의 책임자였다.
오죽하면 신라 최고의 명장이라는 김유신이 수 만의 병사를 이끌고도 (백제 계백 결사대의) 5000를 못이겨 몇 번이나 패배하였겠는가?
신라는 언제나 삼국 중 최약체였다. 심지어는 광개토태왕 시절에는 일본 본토군도 아닌 한낮 왜구들에게 수도 경주가 (포위당하고)약탈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광개토태왕이 병사를 보내 물리쳐 주었을 지경이다. 광개토태왕은 신라를 언제든 먹어 버릴 수 있었으나, 백제의 반발과 왜구들의 침략의 방패막이로 쓰기 위해 그러지 않았다. 그 때 먹어 버렸어야 했는데...
또한 왜구들이란 실체도 실상은 신라.가야 지배집단에서 소외되어 열도로 이주해 간 흉노선비 잔당들이였다. 왜구들의 머리스타일이라는 것이 초원세력의 머리스타일이 아니던가? 그런대도 어떤 정신나간 신라사관론들은 열도에 야요이문명을 건설하여 오늘날 일본문명의 선구자가 되고, 해양을 개척하여 동아시아 교류협력공존에 공헌한 순박한 전라도인들을 왜구로 비하매도하고 있으니 역사관이 정상이 아닌 것들이다.
신라는 삼국시절 내내 고구려와 백제 모두에게 굽신거리며 양쪽 이간질이나 하면서 살아 남은 간사한 무리들이다. 또한 고구려가 쳐들어 올 때마다 신라 여왕(진덕여왕)이 기생마냥 당태종에게 비단치마에 시(태평시)를 수놓아 바쳐 아부하면서 구원군을 구걸하여 간신히 연명하였다. 지금의 영패주의자들이 박근혜로 묘사되는 선덕여왕도 이 짓거리를 했다.
그러다가 결국엔 당나라에 빌붙어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는 고구려땅까지 다 떼주고 우리는 삼국통일했했다네 하고 자랑스러워 한다!(실제 임진강이남에 그친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는 역사날조다/고구려 부흥운동으로 탄생한 대진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신라는 당나라와 함께 여러번 공격했으나 패하여 결국 임진강이남으로 국경선이 정해진 것이고, 당나라도 대진국 발해의 강성함에 그만 '해동성국'으로 인정하며 사신을 파견하여 친선을 요구했던 것이다.)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지원하였다면, 능히 막아낼 수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당나라의 대군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후방의 신라까지 신경써야 했으니 전력이 분산된 것이 패착의 하나다. 고구려.백제 내부의 권력싸움 또한 국력분열의 원인이였다.
혹자들은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마저 공격하려 했을 때 신라가 막아 냈다며 이를 높히 평가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 헛소리다. 당시 고구려.백제 유민들이 합세하지 않았다면 가당치도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당나라는 신라를 완전 꼬봉으로 삼아 원정군 군량미의 대부분을 신라에 부담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신라를 적으로 돌렸으니 장거리 원정을 나온 대군의 군량미가 떨어져 제대로 싸울 수 없어 물러난 것이고(토번의 장안성 점령은 신라까지 토사구팽시키고 삼키려했던 당나라의 야욕을 중지시키는 시급한 국가중대사로 한반도에서 철군할 수 밖에 없었다), 차후로도 드넓은 고구려 땅을 점령한데 만족하고 신라따위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무시한 것일 뿐, 신라가 물리친 게 아니다.
화랑은 초기에만 무력 단체였을 뿐, 중기 후기에는 이쁘장한 남자들을 화장시키고 여자 옷을 입혀 왕족들에 후장 대주는 남창집단으로 변모했다. 신라만큼이나 성생활이 문란한 국가도 없었다. 동성애는 왕족들의 취미생활의 하나로 인정받았고, 여왕들도 화랑들을 매일 침실로 불러 들여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오늘날 강간.성폭행 등 대한민국의 성범죄 유전자들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는 답이 나오는 것이다. 성기를 들어 내 놓고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모습들을 토우로 만든 신라인들을 보면 말이다.
국력을 키우고 병사를 길러 당나라를 쳐서 잃어 버린 고구려 땅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는 커녕, 자기들은 삼국통일했다며 향락에 젖어 살았다. 그 폐단과 음란함, 사치스러움이 썩어 가던 로마말기에 비할만 하다고 하겠다.
김춘추란 작자는 교활한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며, 신라 최고의 명장이라는 김유신은 백제와 고구려 기준으로 보면 작은 부대 부장이나 시켜 놓으면 딱 좋을 인물일 뿐이었다.
자고로 신라 지방에서 큰 인물이 난 적 없고, 조선 시대에도 경상도는 조.일 전쟁과 청.조 전쟁 때 왜군들의 길잡이를 자처했고, 같은 조선 사람들을 공격하여 약탈하는 등 매국질을 일삼았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경상도 병사들은 군기가 없다.경상도 병사들은 목을 쳐서라도 군기를 잡아야 한다 등)와 류성룡의 징비록(경상도 지역에는 털이 많은 원숭이같은 애들-투르크 흉노족과 동일한 일본 원주민 아이누족 유전자-을 많이 낳는데 이는 왜군들의 강간으로 인한 결과다)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반면에 (마한을 계승한 동아시아 해상강국) 백제의 전라도는 국난때마다 끝까지 항쟁하였다. 국토의 대부분이 점령당한 상황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가 건재하게 버티고 있어 수군 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왜군의 진격이 수그러들고 조명연합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 남해와 서해를 통한 해상보급을 차단하고, 전라도의 의병들이 부산을 통해 이어지는 왜군의 육상 보급로를 게릴라전으로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국권이 강탈당한 배경에는 영남의 경주.안동 김씨집단들이 중심이 된 노론집단이 역사적으로 정조대왕을 시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순왕후를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하며 부정부패비리와 농민수탈,그리고 동학농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청.일 군대를 불러 들인데 있었고, 한반도를 놓고 벌이는 청.일전쟁을 부추겨 결국 일본의 승리로 식민지 노예 계약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국권이 강탈당한 직후에도 일본군이 3겹으로 포위하여 토끼몰이를 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강하게 저항한 지역이 호남지역이다.그래서 임시정부요인 중에 호남출신들이 부재한 것이며, 광주학생의거 이전까지 일제에 대한 저항강도가 약했던 것이다.
일제 시대 때에도 친일파의 80%는 경상도에서 나왔다. 그 지방 사람들의 기질이 어떤지 알만한 대목이다. 지금조차 새누리당과 뉴라이트 회원 명단을 보면 70% 이상이 경상도다.('영패주의'로 상징되는 이들은 정치판에서 패거리로 나뉘어져 있을 뿐 오로지 권력욕에만 혈안이 되어 국민적 요구나 민의는 무시하는 기득권 정치만 벌이고 있다.)
그러니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칫 선덕여왕과 김춘추와 김유신을 미화시킨 KBS사극 <대왕의 꿈>를 보고 신라가 뭐 얼마나 대단한 나라고 김춘추 김유신이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르고 신라우월사관으로 나라와 민족을 말아 먹겠다는) 그들은 민족을 배신하여 해민족의 역량을 반이상 깍아 먹어 이 민족이 자그만치 1000년 동안 중국에 고개 숙이고 살게 만든 장본인 들이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을 하였다면 지나국을 부모국으로 섬기는 사대모화 사상 따위는 개나 줬을 것이고, 조선시대에 썩어 빠진 (지나국의) 성리학으로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