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전 반값등록금 약속을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학생들과 가진 면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공약을 한 적 없습니다." 한마디로 대학생들을 멘붕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등록금 투쟁이 벌어졌고, 학생들이 길에 앉아 시위하며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장면들이 벌어졌고, 이들 학생들은 곧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고 연행됐습니다.
박근혜 역시 등록금에 관한 공약을 했지만, 이미 이명박 정권 아래서 기만당한 학생들은 선거전이 한참이던 12월 초 새누리당 당사로 진입, 박근혜 당시 후보와 면담을 요구했고 다시 전원 연행됐었습니다.
최근 들려오는 외국의 소식은 한국 학생들로 하여금 더 박탈감을 들게 할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대학등록금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요. 사회가 대학교육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대학 자체가 비즈니스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 그리고 사회가 대학을 나온 사람만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장인 교육을 통해 기술자와 대학졸업자의 봉급에 별 차이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요.
1970년대 무상교육 시스템이 자리잡았던 독일도 신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기 시작하면서 '교육도 서비스 상품'이라는 교육관, 그리고 주정부 재정 악화를 이유로 한때 수업료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교육에 관한 철학, 그리고 사회의 책임에 대한 국민들의 철학은 결국 교육권의 평등이라는 논리로 등록금을 다시 없앨 수 있는 배경이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고,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미국의 경우는 이런 경우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칼리지'라는 초급대학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와인에 관한 공부는 이 커뮤니티 칼리지를 통해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비싼 대학등록금을 지불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경우 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보통 2년 정도 풀타임 학생으로 학업을 마친 후에 여기서 받은 점수를 정규 대학 학점으로 인정받고 편입이 가능합니다.
대학 문제, 특히 등록금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해결난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일단 학교 자체가 비즈니스로 운영된다는 것, 그리고 대졸자와 대학 비진학자와의 삶의 질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 기저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봉건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번 대선을 돌아봐도 자신이 속한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 '지역대표'에게 표를 던진 표심들, 실제적인 자기 삶의 질이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 등이 투표의 동기가 되었던 표심들... 이런 현상들에서 저는 아직도 극복되지 못한 봉건성을 봅니다. 이것이 예전의 봉건사회보다 더 나빠진 면은 그때는 그나마 공동체의 순기능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공동체 정신 자체는 해체된 상황에서 지연만이 살아남았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바로 그 봉건사회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거죠.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님을 뽑아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요즘 인수위의 행적들을 보면 그런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군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