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정치잡지 'The Week'2월 8일자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동으로 불법체류자들이 궁극적으로 시민권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는 뉴스가 실려 있습니다. 이미 다른 메이저 매체들에서도 많이 다뤘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이렇게까지 전세가 변화된 과정이 우리로서도 한번 돌아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경제적인 위기가 있을 때마다 보수 정치세력으로부터 경제블황과 정부적자의 원흉(?)으로 지적받고 공격받던 이민자, 특히 복지관련 예산을 '잡아먹는다'고 공격을 받아 온 라티노(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멕시코 및 중남미계 이민자들. 멕시코는 중미가 아니라 북미라는 사실은 짚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들의 정치적인 성장은 그들의 폭발적 인구증가에 힘입어 이뤄졌습니다. 실제로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동안, 그리고 그 전에 부시의 대선 승리는 바로 이 히스패닉 표심을 붙잡음으로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레이건 집권 이후부터 보수화되어 왔고 95년 하원의장이 된 뉴트 깅리치가 이끄는 보수주의 공화당 의원들이1994년, 이른바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보수주의적 공약 입안을 주도해 당시 사라지는 직장, 그리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백인 중산층들의 인기를 얻었고 이로 인해 공화당이 40년만에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양극화 상황은 사실 레이건과 대처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레이건은 '유연성의 확보와 자본의 유연한 흐름, 복지 축소와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을 내세우며 미국 경제 전반의 흐름을 바꿔 놓았습니다. 대기업에 신용카드 발행을 허가하고, 미국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기업들은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남미와 동남아, 나중엔 중국 등으로 생산 시설을 옮기기 시작했고, GM 같은 대형 제조업체들은 기술개발에 매진하기보다는 카드 발행을 통해 이자 장사를 함으로서 더 쉽게 돈을 버는 쪽으로 회사 경영의 기조를 틀었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양질의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었고, 미국의 중산층은 점점 얇아져 갔습니다. 자본의 집중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중산층은 계속해 빈곤층으로 밀려나갔습니다.
공화당은 이같은 상황을 '이민자들이 많이 늘어나서 생기는 상황'으로 호도했습니다. 마치 이민자들이 백인 중산층들이 낸 세금을 통해 마련한 복지 재원을 다 써 버리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죠. 실상, 이민자들은 낼 세금들은 다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혜택들이 사라지면서 한때 '노인의 천국'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미국은 말 그대로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인 노인들이 축소되는 영주권자에 대한 복지수혜범위에 대해 직접적인 두려움을 느끼면서 시민권 취득 붐이 일었던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깅리치의 법안엔 영주권자들에 대한 각종 사회보장혜택을 크게 줄이는 것까지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실제로 이 법안들이 공화당의 당시 하원에서의 압승을 통해 실제 법안 신설로까지 이어지면서 노인들의 삶, 특히 이민자 노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은 미국의 필요로 인해 거의 '수입되다시피' 미국으로 들어왔던 라티노 노동자들, 특히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더욱 쉽게 미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멕시코 계 노동자들은 미국에서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 있었던 저임금 서비스 직종을 놓고 미국 내의 빈곤층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여야만 했고, 특히 '레드넥'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남부 지역의 비교적 교육수준이 낮고 빈곤층에 속한 백인들은 공화당의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 건 넘쳐나는 이민자 때문"이라는 극우적 선전에 포섭되어 버립니다. 특히 이들은 히스패닉 이민자들과는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표' 였습니다. 원래 그렇기도 했지만, 여기에 종교적 이유까지도 겹쳐져서 지금도 이 지역들은 선거 때마다 완전히 빨간색(공화당을 상징하는 색. 새누리당도 여기서 기조를 수입한 건가 의심되기도 하는) 으로 표시되곤 하지요.
히스패닉계 유권자 단체들이 속속 출범하고, 미국 내에서 계속 인구를 늘려온 이들은 2011년 새라 페일린의 '티파티'에서 이름을 따 온 '테킬라 파티'를 만들어내면서 실제로 투표에 참여할 것을 독려합니다. 물론 이 전에도 '우리 가족부터 투표를'이란 단체도 있었고, 히스패닉 유권자 연합들도 있었으나 실제로 정치참여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백인주류사회와 타민족들의 멸시와 이들의 잘못된 시각은 결국 히스패닉들에게 적극적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리고 2008년에 이어 히스패닉계의 비교적 적극적 참여는 오바마가 롬니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는 데 있어서 청년들의 정치참여와 더불어 결정적 견인차가 되어 줍니다.
여기서 정치력 동원의 큰 동인은 자발성과, 바로 그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끊임없이 조직화해내려는 지도력입니다. 물론 히스패닉의 경우 미국내 유권자 수가 2천만이 넘어가면서 이들의 결집된 힘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선거 참여를 통해 그대로 보여줬고 이 힘이 미국 전체가 보수화 일변도로 기우는 것도 막은 것이지요. 지금은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모두 히스패닉들에게 '비위맞추기'를 하고 있는 상황. 지난 20년 가까이 이어졌던 반이민 정서, 특히 히스패닉들을 향한 반이민 정서가 점차 희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이른바 99% 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개안과 연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지역정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의 깨달음이 필요하고, 자신들이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기들의 '처지'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이 무엇인가에 대한 각성과 고찰, 나아가 현재 자기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을 키우던가 개혁하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들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려면 우선 스스로 학습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금언,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면 '네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