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추석 때 2류관인 명동극장처럼 입추의 여지가 없는 시스틴채플의 천장을 올려다보니 아담의 육체가 우람차고 강건하다. 잠시 아찔한 경외감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왜 아담을 만드셔서 그의 후손들인 우리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십니까”하고 물었다.
백발에 하얀 수염이 난 하나님과 로만 레슬러 같은 아담의 손가락이 서로 닿을락 말락하는 이 ‘아담의 창조’(사진)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틴채플 천장에 창세기의 내용을 묘사한 여러 개의 벽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벤-허’의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 나와 더 잘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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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당을 찾은 스웨덴 친구 마그너스가 “압도적”이라면서 “난 종교를 안 믿지만 금방 잊지 못할 영적 감동을 받았다”고 감탄했다. 로마서 귀국해 나보다 훨씬 전에 시스틴 채플을 방문한 아내에게 감상을 물었더니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 같은 감격을 느꼈었다”고 말했다.
지난 달 로마 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시스틴채플에 들렀다.가기 전에 각오는 했지만 하루에 2만명씩 찾는다는 성당 안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인파를 헤집고 다니면서 ‘아담의 창조’를 쳐다볼 때의 느낌은 차라리 무감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경건한 감동의 기간이 찰나여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그것은 기시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동안 이 벽화를 그림과 책과 사진으로 너무나 많이 봐 심미안이 마비가 됐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느낌을 LA카운티 뮤지엄에서 고흐와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봤을 때도 느꼈다.물론 감동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가슴이 뛰는 격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모든 것은 늘 멀리서 떨어져 상상으로 그리워하는 것이 막상 동경의 대상을 실존으로 만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와 함께 콩나물시루와 같은 환경에서는 결코 작품의 진가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런 경험은 지난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지 뮤지엄을 찾았을 때도 한 바 있다.
시스틴채플의 인파에 시달리면서 나는 문득 사상 최단시간에 루브르미술관의 전 작품을 관람한 오딜과 프란츠와 아르튀르가 생각났다. 연인과 친구 사이인 이 서푼짜리 강도들은 장-뤽 고다르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즈’(1964)의 주인공들.
셋이 한산한 루브르에 들어가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뛰어가면서 단 9분43초 만에 미술관 내 모든 전시품을 감상했다. 물론 과장된 장면이지만 셋의 자유분방한 관람태도가 부러웠다.
지난 해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의 벽화를 완성한지 500년이 되는 해다.대리석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교황 줄리어스 2세의 부름을 받고 지난 1508년부터 시작해 4년 만에 이 같은 천재적 걸작을 완성했는데 그의 나이 37세 때였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벽화를 그리기 전까지만 해도 대형 벽화를 그려본 적이 없어 교황에게 “그림은 나의 예술이 아니다”고 반대했지만 교황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이런 미켈란젤로와 교황 간의 갈등은 찰튼 헤스턴과 렉스 해리슨이 각기 미켈란젤로와 교황으로 나오는 ‘고뇌와 환희’(1965)에서 잘 묘사돼 있다.
괴테도 “시스틴채플을 보기 전까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개념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감탄했다. 이 벽화를 그리면서 미켈란젤로는 병까지 들고 죽을 고생을 치러야 했다. 그는 당시의 힘든 상황에 대해 “내 수염은 하늘로 향했고 가슴은 하프처럼 구부러졌으며 물감이 떨어지는 붓은 내 얼굴을 포장하고 허리는 창자 속으로 들어갔고 엉덩이는 모래주머니 같다”면서 “화가도 아닌 내가 못된 장소에 와 있다”고 투덜댔다.
채플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65피트.그 높은 곳까지 사다리를 이용해 물과 온갖 그림 재료들을 운반해야 했으니 안 봐도 그 어려움 알만했다. 내가 시스틴채플에 들어가 천장을 쳐다보면서 제일 먼저 상상한 것도 하늘만큼이나 높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켈란젤로였다.그리고 성당 안이어서 그런지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연옥 속의 죄인들이요 하나님이 있는 천장은 구원의 천국 같았다.
미켈란젤로가 12명이 넘는 화가와 기공들을 부리면서 완성한 벽화를 보니 그림들이 사방으로 향해 있어 혼란스러웠다. 그림 전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도 안 되겠구나 하고 마그너스와 나는 동의했다.
그냥 나오기가 섭섭해 경비원의 준엄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마치 도둑처럼 인파 속에 숨어 천장을 향해 카메라셔터를 누른 뒤 성당을 빠져 나왔다. 밖은 여전히 세상이었다.
<박흥진/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헐리웃 외신기자협, LA영화비평가협 (골든 글로브賞 심사)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