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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었다.숙소 문을 나서는 나의 옷깃을 훅 하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워낙 순식간이라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멀리 달려가는 차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 또렷이 들어왔다.
찰라였다. 한 발만 더 내디뎠다면 생을 달리했을 것이다.한 여름 저녁 무렵이었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온 길이지만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내려놓을 뻔 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었겠구나.살아있다는 것도 별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때 예전의 이종수는 완전히 죽었다.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 어차피 욕심을 버리고 모든 걸 내려놓으려고 떠난 산티아고 800킬로미터의 여정이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다리가 부어오르는 고통을 참으며 걷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그런데 그것보다 더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한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 <처음처럼> 속 이야기이다.
머릿속의 생각이 의지로 이어지기 힘들고, 의지가 다시 실천으로 이루어지기까지는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리라.
정말 먼 여행이었다.인생의 반환점을 지나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에 이르러서야, 50여 년을 돌고 돌아서야, 나는 내 삶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운동하는 모든 물체는 관성회사인 에이온(AON) 코리아 사장 자리에 사표를 던지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항상 든든한 우군이던 가족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그래, 해보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타성과 관성에, 세상에 무릎 꿇지 말자.”
“무엇보다 나에게 지지 말자.”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패자부활전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패자부활전을 치른다.나의 아버지도 그랬고, 나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마음같이 되지 않는 세상살이 속에서,어제의 한숨을 떨치고 실패를 딛고 좌절을 물리치며 다시 시작하는 인생. 우리의 삶이란 매일 아침 패자부활전을 치러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생의 힘이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라 믿는다.그리고 다시 시작케 하는 용기는 희망, 격렬한 희망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나의 패자부활전에 관한 이야기이다.나의 인생 2막을 가슴 벅차게 만들어준 소중한 원칙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그리고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위로하고 격려했던 숲과 같은 사람들과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희망에 대한 감사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도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삶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연대(連帶)의 인사로 읽힌다면 더 큰 바람이 없겠다. 패자부활전을 준비하는 동지(同志)들에게 바친다.- 졸저(拙著)<희망은 격렬하다> 프롤로그에서
<이종수:사회연대은행 대표이사/전 에이온(AON) 코리아 사장/서강대 경영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