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사안을 취재하되, 그의 눈은 언제나 사안 건너편에 엄존하는‘ 사실’을 주목한 시대의 감별사
미국의 저널리스트(1909.11.3 ~ 1995.12.6) 1960년 전후까지 수많은 특종기사를 취재하여 《뉴욕타임스》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고 국제적인 기자로 인정받았다. 1969~1974년 뉴욕타임즈의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유명기자를 길러냈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 가운데 정작 주인공은 누구일까.일본 작가 가 고(故) 요시가와 에이치(吉川英治)에 따르면 단연 제갈공명이다. 작가가 전하는 제갈공명 평전(評傳)을 보자.
촉한을 멸하기 위해 진나라의 장수가 수도 성도에 발을 들인다.제갈공명이 죽고 수십 년이 지나 서 일이다. 장수는 그토록 유명했다는 제갈공명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나가는 촌로 하나를 세워 묻는다. 다음은 촌로의 대답.
“글쎄요. (제갈)승상님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어요. 지금 제 앞에 계신 장군님과도 크게 다를 바 없었구요. 그런데 한 가지, 그런 분은 세상에 또다시 나타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듭니다”
상쾌한 명답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며,촌로의 명답 속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고른다면 우리는 누구를 댈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성큼 제임스 레스턴을 대는데 주저치 않을 것 같다.뉴욕타임스 가 배출한 대기자로, 지금은 고인이다. 레스턴은 겉으로 보면 여느 신문 기자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기자였다.
퓰리처상도 두어 번 탔고 특종도 알맞게 건져 올렸다.국제연합(UN) 태동의 모체가 된 덤바튼 오크스 회담의 개최를 특종 했고, 아이젠하워의 집무불능 상태를 터뜨려 백악관을 당혹에 빠뜨리기도 했다.백악관과 국무부 출입 시절에는 대통령과 국무장관에게 그의 동태 하나 하나가 보고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자였다.
그러나 미 언론계가 지금껏 그를 기억함은 그런 막강했던 능력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정작 그리워하는 건 글을 통해 내보인, 그의 부드럽기 봄바람 같고 애정 넘쳤던 시각 때문인 것 같다. 그는 많은 특종을 터뜨렸지만 취재원 누구에게도 필봉(筆鋒)으로 직접 상처를 입혀 본 적이 없던 인물이다. 특정 사안을 취재하되, 그의 눈은 언제나 사안 건너편에 엄존하는‘ 사실’을 주목한 기자였다.
그가 50년 몸담은 뉴욕타임스를 은퇴하며 쓴 자서전 ‘마감시간’(Deadline)은 시대가 막 21세기로 바뀌려던 1990년대를, 마치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의 절박한 순간에 비유해서 단 제목이다. 이 책은 자서전 특유의 자랑이 아닌 감사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다른 책과 다르다.
그는 우선 미국을 상대로 원폭개발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히틀러의 손에 주사위가 먼저 주어지지 않았던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또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이념이 합작이 아닌 분쟁 쪽으로 치달은 것 역시 감사할 일로 여겼다.
만약 분쟁이 아니고 합작 쪽으로 기울었던들 동해로부터 발틱 해까지 심한 격랑에 휘말렸을 것으로 그는 진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이었다는 것, 또 뉴욕타임스 같은 훌륭한 신문에 몸담을 수 있었다는 점도 감사 거리였다. 바로 이런 점이 그가 예사 기자와 다른 점이다.
그가 특히 소속사인 뉴욕타임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관해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였던 고(故)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남긴 자서전에 다음과 같은 사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의 명 주필로 13년을 봉직해온 허버트 엘리스턴이 심장병으로 사퇴하자 그레이엄의 남편이자 사주였던 필 그레이엄은 당시 뉴욕타임스의 주(駐) 워싱턴 특파원 겸 지국장으로 각별한 교분을 지녀온 제임스 레스턴을 그 후임 주필로 영입키로 결정한다. 레스턴의 대답은 그러나 단호했다.
“나를 키워 준 뉴욕타임스를 버릴 수 없다”는 것.
소속언론사에 대한 기자의 충의(忠義)는 이처럼 동양사회의 윤리관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양의 동서나 고금을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직업관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레스턴의 죽음은 한 자연인 기자의 죽음이 아니라 이 시대를 비추는 탐조등 하나가 꺼졌음을 뜻한다. 또 그 탐조등이 예사 탐조등과는 달리 사랑의 열기를 지녔다는 점에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요시가와 식 표현을 빌자면 어쩐지 ‘또다시 나타날 것 같지 않은’ 기자였다.
독서광으로 유명했던 작가 겸 언론인 고(故) 이 병주 선생이 생전 미국을 자주 찾았던 까닭은 ‘뉴욕타임스를 현지에서 찬찬히 읽을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그렇다. 뉴욕타임스는 바로 레스턴 그 자체다. 짱짱한 신문, 또 사랑과 비전을 지닌 기자를 갖는다는 것은 미국의 복이다. 그 시대의 복이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에 가면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간판이 입구에 붙어 있다.‘인쇄하기 적합한 모든 뉴스’를 다룬다는 이 신문의 편집 방향이다.여기서, 인쇄하기 적합하다는 뜻을 되새김 질 할 필요가 있다. 인쇄할‘ 가치’가 있는 뉴스의 뜻으로 나는 읽는다. 쓴다고 다 기사가 아니라, 쓸 경우‘ 모든 것이 가하되, 과연 유익한가’를 감별하라는 자못 성서적 가치 기준이기도 하다.
레스턴이 바로 그 감별사였다. 미국의 감별사, 이 시대의 감별사였다.또 기자로서는 퍽 드문,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취재대상을 봐온 그의 눈은 이처럼 늘 하나님 나라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본 아름다운 시각이 아니었나 싶다.
<김승웅: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23기)/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시사저널>(창간)편집국장, 동 워싱턴 특파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