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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근혜 당선인이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제하(題下)의 글을 올린 즉 (한국일보 1월 12일자 ‘토요에세이’참조), 독자들의 댓글이 20통 넘게 제 메일함에 입전됐네요. 우선 D일보의 파리특파원을 역임하신 K씨의 글을 제 답신과 함께 띄웁니다.
“수년 전 싱가포르에 간즉 아파트 승강기마다 ‘오줌 감식기'가 부착돼있어 놀랐습니다.또 몇 해 전 마이클 페이라는 미국의 한 청소년이 싱가포르에 들러 스프레이 페인팅을 담벼락에 뿌린 적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법원은 그에게 ‘태형(笞刑) 6대’를 판결했습니다.미국은 특사를 보내 긴밀한 협의 끝에 ‘태형 4대’로 형을 낮췄습니다만. 태형을 때리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습니까?”
한마디로 이게 과연 사람 사는 나라인가라는 질문이신데,건국초기 싱가포르가 처했던 상황에 관해 리콴유가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The Singapore Story)"에 남긴 기록으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아파트를 분양한 즉 돼지와 함께 사는 국민이 많았고,씹던 껌을 승강기버튼이나 센서에 붙여 엘리베이터나 전철의 작동이 멈춘 사례도 많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변을 보는 건 약과였다는 이야기지요.다음은 미국 청소년 마이클 페이에 관한 리콴유의 언급.
“페이는 넉 대의 태형을 받고 미국으로 귀국하더니 술 취해 귀가 후 아버지를 구타한 죄목으로 체포됐다. 그러더니 부탄가스를 마시다 성냥불에 가스가 폭발,중화상을 입었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리콴유의 집계대로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인구의 5%는 통제 불능인바, 이를 단속할 해법은 엄한 징치와 격리수용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미국에서도 중형으로 다스리는 밴달리즘이 싱가포르에서 면제돼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미 측의 석방요청을 끝내 거절한 것은 싱가포르의 위엄과 국격(國格)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글 역시 모 경제일간지사장을 역임하신 언론인 L교수의 글입니다.
“리콴유는 화상(華商)의 주류를 형성하는 객가(客家)출신으로, 권력의 기반을 (마오쩌둥처럼)총구(銃口)가 아닌, 전구(錢口)에 뒀던 사람입니다. 객가들은 돈을 제일 무서워한다지 않습니까?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도 벌금대상이더군요. 배부른 비둘기가 벌레를 잡아먹지 않게 함으로써 질병을 퍼뜨린 죄라나요. 그의 공로는 전설에 해당하지만 이 시대에 맞는 민주적인 지도자는 아니잖습니까? 따라서 박 당선인이 우연히 싱가포르에 들려 리콴유를 만나는 건 괜찮지만,굳이 우선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잖습니까?”
싱가포르의 권력기반은 전구에 있지 않습니다.굳이 비유한다면 법구(法口)에 가깝습니다. 싱가포르가 건국된 1965년 전후의 시대적 배경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 5.16이 나고 4년 후 되는 시점으로, 동아시아전역이 월남전의 후폭풍에 말려들어 언젠가 공산화 될지 모른다는 ‘도미노’이론과 그 극복을 핑계로 (우리가 5.16을 겪은 것처럼) ‘대령(大領)들의 쿠데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공산세력의 준동과 제로상태의 국방력,여기에 돈만 알뿐 국적의식 없이 우왕좌왕하는 국민성(화교)까지 겹쳐 적화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이 상황에서 리콴유가 최후로 기댄 치국의 틀이 바로 법치(法治)였습니다. 비리와 부정의 근절, 외국자본이 맘 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지금은 일본보다도 개인소득이 높은 아시아 최고의 부국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으로 제 답신을 마칩니다.
돈은 싱가포르의 경우 목적이 아니라 결과물이었다는 말씀입니다.답신을 올린 김에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리콴유의 언급도 함께 붙입니다.
“1979년 10월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영어를 할 줄 아는 그의 20대 딸의 통역으로 대화를 나눴다. 박대통령은 날카로운 얼굴에 작고 강단 있게 생긴 분으로 엄격해 보였다.그가 일본군의 장교로서 선택되어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로 미뤄, 같은 세대의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인재였을 것이다.”- 한국일보 1월 26일자 <토요에세이>
<김승웅:한국일보 파리특파원,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시사저널 편집국장,국회 공보관,서울대 외교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