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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은 짙은 가을 로마의 피우피치노 공항에서 시내 숙소로 가는 길에 소나무들이 일렬종대로 서 있다. 미장원에 막 갔다 나온 타조의 헤어스타일을 한 소나무들을 보니 레스피기가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로 그린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가 생각났다. 소나무들은 숙소인 포폴로 광장 인근의 보르지아 별장을 비롯해 폐지가 되다시피 한 역사 교과서와도 같은 도시에 만재, 눈과 다리가 피곤한 여객의 세포를 쉬게 해준다.
레스피기의 로마 교향시 3부작 중 다른 하나인 ‘로마의 분수’에 묘사된 웅장한 트레비 분수 앞은 저녁 관광객들로 도떼기시장처럼 붐볐다. ‘애천’에서 세 미국인 처녀가 했듯이 나도 분수를 등에 지고 동전을 던졌다. 두 번에 걸쳐 2유로를 던지면서도 소원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
여정 내내 함께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의 나의 푸른 눈의 금발 키다리 스웨덴 친구 마그너스와 분수 앞 성당에서 고단한 영육을 쉬면서 “난 소원을 못 했어”라고 말했더니 마그너스는 “난 너의 절반만 던지고도 소원했다”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라 돌체 비타’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거대한 육체의 아니타 에크버그가 뛰어들었던 트레비 분수처럼 로마의 또 다른 명물인 스패니시 스텝스도 관광객들이 점령했다. ‘로마의 휴일’에서 짧은 머리의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으면서 걸어 내려온 계단을 나도 그녀처럼 반복했다.
로마의 분수와 소나무는 토니 베넷이 부른 ‘로마의 가을’에도 나온다.그러고 보니 나는 노래와 영화 속의 로마를 다녀온 셈이다.로마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지난해 영원한 도시 로마엘 갔다 왔다.
참으로 늙은 고색창연한 도시다. 사방에 유적들이 뼈들을 드러낸 채 풍우에 시달리고 역사의 무게에 지친 모습들이었는데 골목과 자갈도보와 집들의 벽에 묻은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대학교 때 배운 로마사가 기억났다.
폭우 속에 마그너스와 함께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헵번을 놀래게 해준 콜러시엄 인근의 산타마리아 성당의 ‘진실의 입’(거짓말 탐지기)을 찾았다. 석조 괴물의 벌린 입 속으로 무성으로 비명을 지르며 오른 손을 집어넣었다가 뺐는데도 손이 멀쩡하다. 난 정직한 사람이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거리의 아코디언 악사도 맥주로 객고를 풀던 포폴로 광장의 카페에서도 ‘대부’의 음악을 들려준다. 이 곡만큼이나 ‘황야의 무법자’의 주제곡도 흔하다. 이탈리아어는 액센트가 심해 마치 음악 같은데 사방에 빨랫줄처럼 늘어놓은 어느 한 골목에서 한 여인이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간절한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데 명창이다.박수를 치고 1유로를 기부했다.
포폴로 광장은 늘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마그너스와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단골로 들렀다는 카노바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행인들을 바라보니 이탈리아 처녀들이 감각적으로 예쁘다. 저들 중에서 소피아 로렌과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그리고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비르나 리지 등이 나왔을 게다.
도시의 할아버지 중 할아버지인 로마에서 가장 묵직한 감동을 받은 것은 영화세트 같은 시스틴 채플이 아니라 콜러시엄이다. 2,000년 전의 살육과 그것을 즐기던 로마 시민들의 함성이 환시와 환청을 지으면서 요즘 우리가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떠올랐다. 잔인성은 인간의 유전인자요 역사는 반복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틴 채플의 천장 벽화 ‘아담의 창조’를 보려고 홀에 들어갔더니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옛날 명절의 2류 극장과도 같다. 나도 남들처럼 고개를 쳐들고 ‘벤-허’의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 나오는 ‘아담의 창조’를 찾았다. 일제히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연옥에 갇혀 하늘을 향해 구원을 간구하는 죄인들 같았다.로마엔 성당이 너무 많아 사람들은 죄인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스틴 채플을 나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바실리카를 바라본다.종교의 힘과 인간의 끈질긴 사악함이 과연 언젠가 여기서 결판을 낼 것인가.돌아오기 전날 ‘종착역’에서 총각 교수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유부녀 제니퍼 존스를 찾아 헤매고 또 “떠나지 말라”며 붙잡고 애걸복걸하던 로마 테르미니(사진) 구내를 종아리에 쥐가 날 정도로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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