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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물과 같아서 살아 움직인다.신기하게도 인간의 삶과 똑같이 생로병사라는 과정을 거쳐 결국 소멸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언어의 커다란 약점은(모든 물리적인 현상이 다 그렇지만),힘의 논리에 의해 힘이 약한 언어가 힘이 강한 언어에 제압당해 더 이상 언어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고, 힘이 센 언어가 세상을 주름잡고 판을 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나라의 외국어(영어) 열풍도 그 예외가 아니다.영어 하나만 잘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단선적인 의식이 전국을 휩쓰는 형국이다. 토익도 사실 철저히 미국적 사고방식을 은연중 주입하는 시험 아닌가. 영어에 목숨 거는 것은 천한 문화식민주의(cola-colonization)의 한 현상이다.
미국의 거지들은 영어를 잘하는데 어찌하여 거지가 되었을까? 의식이 ‘거지같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언어를 단순히 기능적인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언어학자가 있다면,이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스스로 폄하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우리나라 어느 소설가 한 분이 ‘영어공용화론’을 주창했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일전에 조그만 읍내 ‘농협’에 들렸다가 벽에 붙어 있는 선전 문구에 아연했던 적이 있다.다름 아닌 ‘모기지론’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농민들의 농사 자금을 지원해주고 원활한 농산물 유통을 위하여 설립되었다는 농협 안쪽 벽에 ‘자랑스럽게’ 붙어서 농민을(고객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 문구는 대단히 도발적으로 보였다.
농협은 더 이상 허리 휜 농부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그 도발적인 문구가 그 속내를 여지없이 대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모기지론’이라니!(‘파리지론’이 아닌 게 다행이랄까?)
처음에 나는 그 문구를 보고는 "모기가 하신 지당한 말씀"이 아닐까 하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이 영어로 ‘모기쥐-로운’(mortgage loan)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그 알량한 금융용어이며, ‘담보 또는 저당 대출’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연 실색하였다.
“에라이, 모기 뒷다리만도 못한 ‘모기지론’ 같으니라고!” 나는 속으로 한 마디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시골 농협 정도 되면, 농민의 아픈 마음이라도 달래줄 문구(예를 들어 "아, 양파를 보면 눈물이 난다!")라도 적어 두거나, 하다못해 옹달샘 샘터 그림이라도 하나 걸어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기지론’으로 언짢았던 마음이 가시기 전에 ‘방카슈랑스’ 때문에 기분이 잡쳤던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방카슈랑스 도입 신중하게”라는 신문칼럼 제목 때문이었다.제목만 보아서는 도무지 의미연관이 떠오르지 않다가, 글쓴이가 모 대학 금융보험학과 교수라는 것을 알았고, 몇 줄 읽다가 그 어구가 ‘bancassurace’라는 사실과 본래 `방카슈랑스`라는 어휘는 프랑스어 ‘banque(은행)와 assuarance(보험)’를 합성하여 만든 금융용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이상 읽지 않고 신문을 내팽개쳐 버렸다.
제목을 무어 그리 자랑스럽다고 큼지막하게 “방카슈랑스...” 어쩌고 라고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언어도 여지없이 그레샴의 법칙이 작용하는가 보다."악어(惡語)가 양어(良語)를 구축(驅逐)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은 점점, 아니 거의 무한 속도로 외래 말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없어서 내줄 것 없다는 식으로 막무가내 가슴을 열어젖히는 어리석은 짓일랑 여기서 멈추었으면 한다.
우리 집 앞 살가운 [연탄구이 집]이 언젠가는 [뿡딩브랑쉬]1)로 바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씁쓸하다.1)‘뿡딩부랑쉬’: 필자가 그냥 떠오른 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써 보았음
<윤창식/초당대 외국어학부 교수/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