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나는 아주 즐긴다.기회가 되고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면 여행을 놓치지 않는다.어릴 때는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이 ‘외교관의 꿈’으로 연결 되었는데,어른이 되어서는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넓은 세상에서 보고 배우는 즐거움이 갈수록 더욱 커진다.
나는 낯선 나라에 가면 가급적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식당은 잘 관찰하여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간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짓으로 다 통한다.길거리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그들의 표정, 몸짓, 말투, 행동에서 그 나라의 습관과 문화를 엿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영국 런던에 일주일 다녀왔다.런던에서 개최된 철학자 학회에 남편의 발표가 있어 함께 다녀왔다.예전에 독일에서 살 때 런던에 여러 번 가봤지만 매번 일정이 짧아 항상 아쉬웠다.물론 일주일도 한때 세계를 '지배' 했던 대영제국의 수도를 구경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이번에는 공무가 아닌 순수한 여행이기에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에서 이틀, 국립화랑 (The National Gallery)에서 하루, 웨스트민스터사원 (Westminster Abbey)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나머지는 런던 시내를 걸으며 화려하고 웅장한 역사적 건물들을 관찰하면서 발은 아팠지만 눈은 호사를 누렸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걸어 다니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박물관에서는 한 때 해가 지지 않았다던 대영제국의 면모를 볼 수 있었고,세계 각국에서 온 유물에 대한 설명서에는 영국으로 건너온 계기가 합법적이었다는 내용이 애둘러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찰스왕세자와 윌리엄 왕손의 결혼식 중계로 우리에게도 익숙해져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영국의 많은 국왕들은 물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이
그곳에 안식하고 있어 묘비를 일일이 읽으면서 계속 놀라워했다.
살아서는 숙적이었던 헨리 8세의 두 딸 메리 1세('bloody Mary')와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1세가 죽어서는 하나의 왕관 아래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1714년 영국왕실을 계승하기 위해 독일 하노버에서 런던으로 건너간 조오지 1세에 의해 영국으로 불려간 음악가 핸델도 그 사원에 누워있었다.
런던에 도착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본 지하철내의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폭이 좁아 '튭' (tube) 이라고도 불리는 지하철은 우리나라처럼 양쪽에 좌석이 있는데 좌석사이에 팔걸이가 있어 옆 사람과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었다. 좌석 뒤에는 우산을 놓을 수 있는 작은 홈이 있었다. 좌석에 앉은 대부분의 승객이 (서있는 승객들도 상당히 많이) 신문이나 책을 읽었다.몇 명은 아예 연필과 지우게까지 동원하여 자료를 교정하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고,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10명 중 8-9명은 핸드폰, 요즘은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TV를 보거나 문자를 쓰거나 통화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참 가다가 내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중년부인이 갑자기 일어나 문 옆에 서있는 젊은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계속 신문을 읽었다. 영문을 몰라 궁금했는데, 그 젊은 여성의 코트에 달린 '뱃지' (Baby on Board)를 보고 궁금증이 풀렸다.임신 초기의 산모는 외형으로 임신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아주 센스 있는 방법이다.
또 눈에 띠는 풍경은 접어서 들고 들어오는 자전거였다.여러 사람이 좁은 지하철에 접은 자전거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도로가 좁은 런던의 상황에 맞게 식당에도 자전거를 접어서 들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아 실용적인 영국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편이 사는 곳은 보스턴 근교인 Andover인데 소위 중상층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는 미국의 유명한 사립명문 고등학교인 Phillips Academy가 있어 세계 각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예전에 이 학교에 Bush 가문과 Kennedy 가문의 아들들이 다닌 학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Andover 시내의 몇 가게는 재키 케네디가 필립스 아카데미에 다니는 아들을 만나러 왔을 때 자기 가게에 들렀다고 자랑 하는 곳이 있다.
이곳의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다음날인 금요일 (11. 23) 보스턴 시내에 갔다. 모든 백화점과 가게에서 연중에 가장 큰 폭으로 세일을 시작하는 날이라 해서 나가 보았다. Andover에서 ‘칙칙폭폭’ 기차로 40분을 가면 보스턴 시내다. 미국에서 가장 ‘영국적인 도시’로 알려진 보스턴 시내에서 외형만 보면 이곳이 영국인가 착각하기도 한다.
다른 곳과는 달리 아직도 보스턴 시내와 근교 지역을 연결하는 기차가 있어 자동차 없이 사는 우리에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족숫자 만큼 자동차를 보유하고 사는 이 동네에서 남편은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니는 철학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외에는 주택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는 구경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한번은 마트에서 시장을 본 후 두 개의 큰 비닐 백을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남편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불심 검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내가 만약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하면 자동차를 사야 하겠지만, 나는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할 생각이 아직 없다.
이곳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선로는 단선이고 아주 오래되고 낡은 기차가 출퇴근 시간외에는 어쩌다 한번 씩 다니지만, 미국에서는 호사스러운 대중 교통편이다.이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나 보스턴 시내에서 전철에 탄 상당수 사람들의 손에는 커다란 음료수 컵 (뚜껑 닫고 긴 깔대 꽂은)과 햄버거가 들려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지쳐있고 기차나 전철 내부에는 버리고 간 종이컵이 뒹군다.
그래도 보스턴 시내 전철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타(보스턴 시내와 근교에는 약 150개의 대학이 있다고 함)분위기가 아주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만약 뉴욕 공항에 내려 지하철로 시내에 가려면 ‘목숨 걸고’ 가야 한단다.
나는 독일 베를린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내가 애지중지하던 BMW는 세르비아에 대사로 갈 때도 가지고 갔지만 서울로 돌아오면서 팔았고, 서울에서는 자동차 없이 산다. 지하철이 내 자가용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서울의 지하철처럼 깨끗하고 편리하고 요금도 저렴한 곳은 본적이 없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이용과 함께 내 의상도 달라졌다.많이 걸어야 하니 하히힐 대신 굽 없는 편한 구두로 바뀌고, 편한 구두를 신다보니 스커트가 어울리지 않아 바지를 입게 되었다.현직에 있을 때는 스커트 정장만을 입었는데, 이제는 바지 사기에 바쁘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을 보면 괜히 반갑다.
매년 여름 베를린에 도착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한 달간 유효한 대중교통 정회권을 사는 것이다. 정회권을 사면 매번 티켓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편리하다. 특이한 것은 월 정회권으로 대중교통 (버스, 지하철, 전철)을 이용할 때, 평일 (월-금) 저녁 8시 이후나 또는 주말(토, 일)에는 다른 성인 한명과 아이들 3명까지 무료로 같이 탈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월 정회권이 있고 전 가족이 이를 함께 이용하는 샘이다. 월 정회권도 가격차이가 있는데, 장애인은 무료, 학생은 저렴, 만 65세 이상 노년층은 일반인의 반절 가격이다. 사회복지제도가 잘된 것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65세 이상의 노년층에게 무조건의 무료 승차는 없다.
베를린에서는 연말에만 특이한 대중교통 티겟 제도가 있다.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