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董狐直筆(동호직필)'이란 춘추시대 고사인데,그 의미는 정직한 기록, 즉 기록을 맡은 이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긴다는 뜻입니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입니다.당시 왕이었던 영공(靈公)은 무도한 인물로, 재미삼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탄환을 쏘고는 사람들이 겁에 질려 이리저리 피하는 것을 즐겼던 인물입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둔(趙盾)은 영공(靈公)의 이러한 행동을 간하자,영공(靈公)은 오히려 조둔(趙盾)을 죽이려 합니다. 박해를 피해 어쩔 수없이 망명길에 오른 조둔(趙盾)은,그러나 그의 조카인 대신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는 소식을 국경을 넘기 직전에 듣고 도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조둔이 그 군주를 시해하다(趙盾弒其君).” 조둔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호(董狐)는 말하길, “시해당시 대감은 책임자로서 엄연히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려 하지 않았으니,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의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둔(趙盾)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오명을 뒤집어씁니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평하길, “동호(董狐)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반면 조둔(趙盾)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럽도다! 그가 국경만 넘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좌전>의 해당부분을 아래에 옮깁니다.
秋九月(추구월) : 가을 9월에
晉侯飮趙盾酒(진후음조둔주) : 진후(晉侯) 영공(靈公)은 조둔(趙盾)에게 주연을 베풀어 주면서
伏甲將攻之(복갑장공지) : 갑사(甲士)들을 매복하게 하여 그를 죽이려려고 하였다.
其右提彌明知之(기우제미명지지) : 그러나 조둔의 부하인 제미명(提彌明)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趨登曰(추등왈) : 급히 마루에 뛰어올라 말하길,
臣侍君宴(신시군연) : "신하가 임금의 연회에 참석하여
過三爵(과삼작) : 석잔 이상을 마시는 것은
非禮也(비례야) : 예(禮)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遂扶以下(수부이하) : 즉시 조둔을 부축하여 내려오게 했다.
公嗾夫獒焉(공주부오언) : 그러자 영공(靈公)은 맹견(夫獒)들을 풀어 달려들게 하였으나,
明搏而殺之(명박이살지) : 제미명(提彌明)이 개들을 때려 죽였다.
盾曰(둔왈) : 그러자 조둔이 탄식하며 말하길,
棄人用犬(기인용견) : "신하들은 버리면서 대신 개를 사용하니,
雖猛何爲(수맹하위) : 비록 개가 사납다고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鬪且出(두차출) : 격투를 벌려 주연장을 빠져나오는데,
提彌明死之(제미명사지) : 이때 제미명(提彌明)은 (단신으로 군사들을 막다가) 죽었다.
初宣子田於首山(초선자전어수산) : 한편, 과거에 선자(宣子: 조둔을 말함)는 수산(首山)에서 사냥을 하다가,
舍于翳桑(사우예상) : 예상(翳桑)이라는 곳에서 묵었던 일이 있었다.
見靈輒餓(견령첩아) : 그때 영첩(靈輒)이라는 사람이 굶주리고 있는 것을 보고,
問其病(문기병) : 병이 들었는가고 묻자,
曰不食三日矣(왈불식삼일의) : 그가 대답하길 "사흘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니,
食之(식지) : 그에게 먹을것을 주었는데,
舍其半(사기반) : 그가 먹을것을 반쯤 남겨두기에,
問之(문지) : 그 이유를 물으니,
曰宦三年矣(왈환삼년의) : 대답하기를 "벼슬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 지 3년이 되어,
未知母之存否(미지모지존부) : 어머니가 살아 계신지, 아닌지를 아직 모릅니다.
今近焉(금근언) : 그러나 이제 집이 가까우므로,
請以遺之(청이유지) : 청컨데 남겨서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使盡之(사진지) : 그러자 조둔은 나머지를 다 먹게 한 후에,
而爲之簞食與肉(이위지단식여육) :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밥과 고기를,
諸橐以與之(치제탁이여지) : 주머니에 넣어 그에게 주었다.
旣而與爲公介(기이여위공개) : 그는 얼마 후에 영공(靈公)의 갑사(公介)가 되었으나,
倒戟以禦公徒(도극이어공도) : (주연이 벌어진 날), 창을 거꾸로 하여 영공의 군사를 막아서,
而免之(이면지) : 조둔을 달아나게 하였다.
問何故(문하고) : 조둔이 "어찌된 일인가?"하고 묻자,
對曰(대왈) : 그는,
翳桑之餓人也(예상지아인야) : "과거 예상(翳桑)에서 굶주리던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問其名居(문기명거) : 조둔이 그의 이름과 사는 곳을 물었으나,
不告而退(불고이퇴) : 대답하지도 않은 채 물러가더니,
遂自亡也(수자망야) : 마침내 스스로 달아나 버렸다.
乙丑(을축) : 을축일에
趙穿攻靈公於桃園(조천공령공어도원) : 조둔의 조카인 조천(趙穿)이 영공(靈公)을 도원(桃園)에서 시해(弑害)하였다.
宣子未出山而復(선자미출산이부) : 당시 조둔은 아직 국경인 산을 넘지 않았을 때여서, (소식을 듣고는) 되돌아왔다.
大史書曰(대사서왈) : 그러자 태사(大史) 동호(董狐)는,
趙盾弑其君(조둔시기군) : "조둔이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였다."라고 기록하고는,
以示於朝(이시어조) : 그것을 조정에 내보였다.
宣子曰(선자왈) : 조둔이
不然(불연) : "그렇지 않다."고 하자,
對曰(대왈) : 동호(董狐)는 대답하길,
子爲正卿(자위정경) : "당신은 (한 나라를 책임진) 정경(正卿)으로서,
亡不越竟(망불월경) : 달아났으나 국경를 넘지 못해 (국내에 있었고),
反不討賊(반불토적) : 돌아와서도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非子而誰(비자이수) : 당신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져야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宣子曰(선자왈) : 그러자 조둔은,
嗚呼(오호) : "오호라...
我之懷矣(아지회의) : <시경. 패풍(邶風)>에 '내가 그리워하는 이여,
自詒伊慼(자이이척) : 내 스스로 시름을 자초하였도다!'라고 한 것은,
其我之謂矣(기아지위의) :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라고 탄식하였다.
孔子曰(공자왈) : 훗날 공자(孔子)는 이에 대하여 평하길,
董狐(동호) : "동호(董狐)는
古之良史也(고지량사야) : 옛날의 훌륭한 사관(史官)이다.
書法不隱(서법불은) : 법대로 기록하여서 조둔이 죄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趙宣子(조선자) : 또한 조둔(趙盾)도
古之良大夫也(고지량대부야) : 옛날의 훌륭한 대부(大夫)이다.
爲法受惡(위법수악) : 법을 위하여 오명을 달게 받았다.
惜也(석야) : 아깝도다!
越竟乃免(월경내면) : 그가 국경을 넘기만 했더라도 죄명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였다.
<하태형: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경제학 박사(뉴욕주립대)/고전(古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