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사온 커피는 코스타리카 산이었습니다. 똑같은 중남미 산이지만, 콜럼비아의 수프레모나 과테말라산과는 다르게 원두도 조금 작은 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코스타리카 산을 그렇게 진하게 볶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볶은 것도 꽤 진하게 볶은 듯 했고, 맛도 거의 수마트라 정도로 흙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애틀에 산다는 것은 커피 문화의 체득뿐 아니라 커피의 사소한 차이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코스타리카 산 커피를 산 건... 가격이 저렴해서. 원래 아라비카종 커피 중에서는 콜럼비아 수프레모가 가장 가격이 저렴했는데, 언제부터 슬금슬금 가격이 오르더니, 2-3년 전 3파운드 봉지에 $10 정도 하던 것이 $16 정도로 올랐고, 이에 맞춰서 카페에서 파는 커피 가격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 올랐다고 자동차 안 탈수 없는 것처럼, 커피의 소비량 자체가 줄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겨울의 시애틀은 비가 내리는데도 춥습니다. 그냥 꽝꽝 얼면서 추운 것보다 이런 애매한 추위가 때로는 더 춥게도 느껴지는 법인지라, 이럴 때면 뜨거운 커피에 대한 의존도는 아무래도 더 높아집니다.
출근길은, 그렇게 우려낸 커피를 머그에 담아 홀짝거리며 온갖 상념들을 담아냅니다. 국적은 달라도, 피부 색깔이 달라도,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다 해도, 아침 출근길의 5번 고속도로를 꽉 메운 차들은 대부분 통근자들일 것이고, 거의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 것입니다. 사회 안에서 그들은 다 사연들이 틀린 개인들일 것입니다. 그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라면, 아마 사회 안에서 생활인일 것이고, 직장, 혹은 학교에 몸을 담고 현재와 미래를 가꾸어가는 사람들일 거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운전할 때 보면, 지난 미국 대선때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롬니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자기 차 범퍼에 붙여 놓은 스티커들에 눈이 갑니다. 그런 차들을 앞질러 갈 때마다 운전자의 얼굴을 한번 흘끔 보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오바마를 지지했구나, 아, 저 사람은 생긴 것부터 롬니 지지하게 생기긴 했네, 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길을 재촉합니다.
정치란 건 집단의 여망이 모이는 거지만, 그 전에 우선 '개인적인 가치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게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대표하는 정당이 있어서 그 정당을 지지하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힘을 모아내는 거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를 말하는 한국에서 정치가 이런 '개인들이 모여 힘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혹은 아직도 집단의 논리가 그대로 수용되고 통하는 것인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고, 이것이 개인의 가치관과 속해 있는 계층계급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참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보면 정치도 참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기호만큼이나.
먼저 '개인'의 차원에서 자기가 겪게 될 '정치'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집단의 기호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로서,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그러기 위해선 우리 개개인이 먼저 각성하고 깨어난 다음, 그 힘이 뭉치면 됩니다. 공동구매란 것이 그렇게 이뤄지는 것처럼.
점심시간 끝났습니다.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