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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국원왕 시기인 4-5세기에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 유입되어 부여계 박혁거세의 사로국을 무너 뜨리고 신라왕조를 세운 오리지날 투르크계(백인과 혼혈) 흉노족 얼굴이 김태촌의 얼굴형이다. 후손들에게 얼굴형과 기질을 담고 있는 피(유전자)는 결코 속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코카서스 인종과 피가 섞여 얼굴이 이국적이고 체형이 빼빼하고 광대뼈가 뛰어 나오고 말이 소란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오리지날 김씨의 경우에는 수렵.유목생활을 했던 초원세력으로 대변되는 흉노족의 후손들이고(김씨 중에서 체형이 통통한 스타일은 4-5세기 흉노족과 함께 경주로 유입된 선비계통이라 본다), 지나사에서 북위-수-당을 개국한 이씨의 경우에는 오리지날 선비족의 후손들이고, 해(태양)을 뜻하는 고씨.박씨의 경우에는 부여족(고구려)의 후손들이고, 한씨.서씨의 경우에는 고조선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난하 동쪽지역을 다스렸던 번조선(기자조선)의 마지막 단군이였던 기준의 후손들이다. [환단고기]단군사에도 기록될 정도로 성씨가 오래된 윤씨의 경우는 오리지날 단군족의 후손이다. 물론 대한민국 모든 성씨들이 올라 가면 마고.환인.환웅족에서 나온 한민족이다.
고추모(주몽)의 할아버지 해모수가 부여를 개국한 진시황 시기에서 서기 2세기까지 초원을 지배하던 흉노족은 한나라와 선비족의 협공으로 2세기 이후에는 사분오열되면서 초원의 지배권이 흉노족에게 패하여 대홍안령 산맥에서 수렵생활로 살게 된 선비족에게로 넘어 가게 된다.
4세기에 유럽에 출현하여 게르만족을 로마국경지역으로 밀어 버리고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까지 유린하고,결국 유럽연합군에게 패하여 헝가리를 세운 훈족이 바로 이들 흉노족의 갈래다. 편두.동복.적석목곽분이 흉노로 대변되는 초원세력의 아이콘이다.
따라서 경주지역의 4-5세기 적석목곽분의 주인공들은 선비족에 흡수되었다가 고구려 전쟁에 동원된 흉노족의 무덤들이다.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부족연맹체를 형성했던 가야의 경우에는 부여계 기마유물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역시 선비족에 흡수된 녹산지역 부여족의 무덤들이기 때문이다.
녹산지역 부여는 동부여에서 부여로 망명하여 부여왕에 오른 후에 부여국호를 고리(고려)로 바꾼 고추모의 반대세력으로 부여를 사수하겠다는 잔존세력이라 할 수 있다. 서남해 지역에 해당하는 마한 54개국 중에 하나로 웅진(공주)에 백제를 세운 시조 구태도 이 부여족이라고 보면 된다. 녹산지역 부여는 근초고왕 시기에 부여맹주를 내세우는 백제에게 정벌당하여 모용선비족의 서쪽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자치통감]기록에 따르면 다시 모용황 시기에 모용선비족의 정벌로 선비족에게 흡수되게 잔존세력으로 서진하여 볼가강 지역에서 지금의 불가리아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불가리아는 부여 고리의 결합어이기 때문에 불가리아는 부여족이 세운 나라가 틀림없다.
그러니까 선비족에 흡수되어 4세기 고국원왕 당시 고구려와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고구려 북부전선에서 대패한 선비족의 흉노.부여 기마족이 한반도 동해안을 타고 내려 와 흉노족은 신라왕조를 세우게 되고, 김해지역 가야 지배자들의 고분에서 부여계 기마유물들이 출토되었듯이 부여족은 가야지배세력으로 들어 갔고, 이들 흉노.부여 기마족이 대마도를 걸쳐 일본의 기마문화까지
형성하게 되는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의 흉노토벌시에 한나라에 투항한 김일제의 후손들인 김씨는 흉노족이다. 선비족에 흡수되어 고구려 전쟁에 동원된 흉노족이 바로 신라왕조를 세우고 김씨 성씨로 창씨개명한 흉노족이다. 신라 법흥왕이 바로 모진에서 김원종으로 창씨 개명한 흉노족이다. 모용선비는 모용씨를 시조로 삼는 선비부족인데,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부활을 꿈꾸며 국호를 연으로 정하고 중원을 차기하기 위해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를 고구려를 선제공격함으로써 국내성을 유린하고 미천왕의 무덤을 도굴하고 고국원왕의 모후와 왕후,그리고 5만의 백성들을 인질로 끌고 가 고구려사에서 최고의 비극을 안겨준 그 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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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시기에 철저히 응징당하여 결국 모용선비족의 연나라는 망하고,대신 고구려 유민출신으로 연나라 왕 모용보의 양아들이 된 고운(모용운)을 왕으로 세워 고구려 제후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고구려가 방어전략을 잘못 짠데서 나온 방어적 실책이였다. 즉, 고구려 남쪽은 지형이 험해서 모용선비족이 공격로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하에 1만여명의 적은 수의 군대를 주둔하였고, 대신 길이 평탄한 북쪽지역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4만의 군대를 주둔했는데, 모용선비족은 이러한 고구려의 예상을 깨고 대군을 동원하여 남쪽 루트로 공격하여 고구려 영토를 유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흉노.부여족 등 모용선비족에 흡수된 용병들은 북쪽 루트로 보내 크나큰 인명 손실을 가져 왔고, 흩어진 흉노.부여 기마군단이 동해안을 타고 경주.김해지역까지 유입되어 신라.가야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들 모용선비족에 흡수된 흉노족이 모씨로 성씨를 사용했다가 한반도로 유입된 이후에는 김알지의 김씨로 성을 바꾸어 흉노족 중심의 골품제로 신라정치권력의 독점을 실현한 것이다.흉노족 중심의 골품제로 신라정치권력의 독점의식이 지역공동체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지역통합을 깨고 정치적 독점과 부패를 낳은 영남 중심의 영패주의 정치의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도 이들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 되는 김일성 일가가 독점독재정치로 민족의 반쪽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외세보다 더 악질적이고 부패한 권력집단으로 남북한 국민(인민)이 무너뜨려야 할 남.북한의 신라영패주의 정치집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패의식으로 인하여 영남출신의 몰지각한 역사학자들은 신라우월사관에 따라 문명이란 본래 기후가 따뜻하고 농경지역인 한반도(세계 중심지=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인류문명의 심장)같은 지역에서 꽃피우고 발전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시원지를 문명이 발전할 수 없는 유라시아 지역의 설산.사막.초원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민족사까지 날조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패주의의 정치적이고 민족사적인 독점과 오만을 무너 뜨리고 오리지날 환국의 민족혼(책임지는 자유와 함께 인종.지역.학벌적 차별이 없고 나누는 대동홍익 정신)과 객관적이고 공정한 한국적인 지성을 살려야 할 것이다.
*고고학적 유적.사료-울진 봉평비.삼국사기.양서.만주원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