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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부르며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한다
다시 바람 앞에 섰다. 마음이 설렌다. 낱나(個我)를 넘어서 온나(全我)를 보는 순간이다.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중 어떤 하루는 역사가 된다. 인생의 신비이며 환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신비와 환희는 삶의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해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 앞에서 느끼는 애틋함도, 하찮은 삶의 흔적에서 찾아내는 삽상한 감성도, 주눅 든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의지도, 어김없이 이만 때면 늘 새롭게 찾아온다.
소리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때로 강철 새잎으로 날갯짓을 한다. 일상은 찌질 하게, 때로는 가슴을 후벼 파는 사랑의 얼굴로, 좌절과 아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의기소침함으로도 다가온다. 몸을 추스르며 저 높은 곳을 향한다. 보라. 가슴을 시리게만 하던 동토의 새벽이 어느새 해오름의 갈채로 채워지고 있다. 뜨거운 함성처럼 동녘의 지평선이 따끈하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다시 뜨거운 노래를 부르자. 힘을 모아 우리 서로 일어서는 빛이 되자.
일찍이 예지의 무늬를 바둑판처럼 깔고 간 선구자가 있었다. 그렇다. 그 분의 생은 신실했기에 우리의 본보기였으며 스승다움 그 자체였다. 그분은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고 했다. 동의한다. 그러기에 ‘
서생(書生)적 문제의식(問題意識)과 상인(商人)적 현실감각(現實感覺)’을 아울러 갖춰야겠다고 다짐한다.
꿈을 꼭 붙들어야겠다. 꿈이 없으면 인생은 날 수 없는 날개 부러진 새와 같으니까.
꿈을 꼭 붙들어야겠다. 꿈이 사라지면 인생은 눈으로 얼어붙은 황량한 들판 같으니까.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한 번 더 기억한다. 이는 ‘노력하라.’는 말과 동의어기 때문이다. 섣부른 착각이나 대책 없이 헛바람만 채워주는 무책임과는 대비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줍지 않은 경구나 덕담에는 거부감이 인다. 그분은 생명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추기 위해서 ‘힘을 내고, 용기를 내고 두려움을 떨치며’ 무지막지하게 노력했다. 자기 앞의 생을 빛나게 다듬었다. 그분의 말은 오늘도 숨을 쉬고 있다. 생명의 광채를 새벽별처럼 내뿜고 있다.
대저 민족의 지도자란 이러해야 한다. 대양처럼 도도한 견인력을 갖춘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세월과 공간을 넘어 거듭 피어나고 진화하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 무게감과 인간미가 스며있고, 유머와 해학이 있어 재미 또한 깃들어 있어야 한다. 신실하고 진실해야 한다.
파발을 띄운다. 우리 모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나라"를 소망하기에 “천년도 하루 같고, 하루도 천년 같은” 시공을 초월하여 거듭나는 불사불멸의 희망을 꿈꾸자고. 더디게 찾아올지라도 그것은 초록이 피어 산맥을 이루듯이 끝내는 우리 앞에 파도처럼 일렁이며 기필코 다가온다. 우리 고운 빛 떨치며 일어나 화답하자.
본문 굵은 글씨는 김대중님과 랭스 휴스턴의 글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박정례/ 르포작가/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