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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술을 배운다, 특히 '서민'으로서 술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소주를 마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시는 술의 종류도 많아지고, 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면에서 세월이 그만큼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한국에서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이 '소주를 마신다'는 말과 동일어일 정도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 소주의 문화는 미국에 와서도 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술 문화인듯 합니다. 제가 사는 워싱턴주의 경우 소주가 증류주로 분류돼 있어서, 많은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 결과, 2홉들이 소주 한 병에 거의 7달러가 되는 돈을 내고 사 마셔야 합니다. (사실 제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그 황당한 소주 가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다녀 온 친구들이 구해오는 옛날 소주(25% 오리지널 두꺼비)를 마시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던 이유는 그것이 술을 마시는 것 뿐 아니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습관'을 충족시키는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어떤 '의미'가 입혀졌을 겁니다.
캘리포니아 같은 곳은 하도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고, 또 고기와 소주를 함께 하는 것은 문화라는 논리를 미국 정치인들에게 설득시켜 소주를 증류주가 아닌 '와인'으로 분류시키는 로비를 해서 성공시켰고, 이 때문에 세금이 크게 줄었습니다. 지난번 캘리포니아 놀러 갔을 때 친구들이 고기집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사 줬는데, 식당에서 소주를 파는 가격이 5달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시애틀에서는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려면 아무리 허름한 선술집이라고 해도 2홉들이 한 병에 10달러에서 15달러 사이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도 소주를 마시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소주가 그만큼 국민의 대중주로 자리잡은 지 오래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자, 하나 테스트를 해 볼까요? 다음 단어들을 나열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보쌈. 돼지고기, 삼겹살, 생선찌개... 이 단어들을 듣고 '맥주'나 '와인'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글쎄요, 맥주 까지는 생각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당연히 '소주'를 떠 올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특권집단인 검찰의 경우는 스카치를 뇌관으로 한 폭탄주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니면 서민들 역시 서민풍의 폭탄주인 '소맥'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소주'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시지 않으실까요?
소주의 기원은 아랍에서 시작된 증류주라고 합니다. 그것을 '아락'이라고 불렀고, 세계제국을 세운 몽골이 고려 침공 당시 개성과 안동 등지에 이 증류주를 만드는 술도가를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 땅에 최초로 세워진 디스틸러리였던 셈이죠. 안동 소주나 개성 소주(개성에서는 소주를 아예 아락주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가 유명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바탕을 깔고 있는 셈이죠. 이런 증류주의 전통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명주들이 사라져 버린 것은 일제의 극악한 탄압과 수탈 때문이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어쨌든, 증류주가 전해지고 나서 이것은 꽤 고급술로 여겨졌고, 심지어는 일반 서민들은 만들어 마실 수 없도록 하는 법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당시의 원활하지 못했던 식량 사정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대목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에 비가 많은 기후 때문에 과실의 당도가 서양의 과실처럼 농축되지 못해서 단발효주인 와인을 만들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곡물을 이용한 복발효 형식의 술을 만들어 왔고, 막걸리와 이를 가라앉히거나 거른 청주 스타일의 술이 대종을 이뤘고, 증류주도 근근히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양반들이 모여 향약 체계 아래서, 혹은 서원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던 지역들일수록 더 다양한 술 문화들이 이어져 내려왔고, 안동 소주라는 이름이 유명한 것도 아마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지 않은가 짐작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스타일의 '희석식 소주'는 1965년부터 생겼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곡류로 증류주를 만드는 것을 금지시켰고, 고구마 등의 구황작물을 이용하여 만든 에탄올(주정)에 물을 섞어 만든 이 술은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에게 솔직히 '강제된' 술맛이었고, 이 소주와 더불어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와 쌀이 아닌 보리로 만들었기에 크게 규제받을 이유가 없었던 맥주가 사람들의 대중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이른바 산업화 시대, 산업역군들이 매일 술을 마시고 그 힘든 처지를 잊고서도 그 다음날 다시 일을 나갈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유지하기 위해 소주의 알콜 도수는 30도 정도에서 시작해 25도로 꽤 오랫동안 유지됐습니다. 지금은 소주 회사들이 여성 애주가들을 잡기 위해 소주의 도수를 20도 정도 선으로 만들고 있지만, 과거 25% 짜리 소주의 맛에 길들여졌던 제 입맛에 요즘 소주는 영 싱겁습니다. 아마 그건 대부분 제 나이의 주당들이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거기에 맥주까지 싱거워지니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는 소맥이 하나의 대세를 이룬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저 높은 분들, 그러니까 요즘 한참 개혁의 대상으로서 말썽이 많은 분들이 뿌린 음주문화인 '폭탄주 문화'의 서민형태로서의 패러디로서도 소맥은 하나의 문화가 된 듯 싶기도 하고, 또 실용주의적인 멋도 있고, 그렇습니다. 미국 동포들은 보통 쿠어스나 버드와이저 같은 순한(제 생각으로는 싱거운) 맥주에 소주를 섞어 먹으며 이걸 '말아먹는다'고 표현하더군요.
아무튼, 우리의 술 문화는 꽤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요즘 들어 다시 복권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진짜 증류주인 이강고, 관홍고, 죽력고 등의 이른바 '조선 3대 명주'가 다시 부활되기도 했고, 제대로 된 술들이 부활하는 것과 발맞춰 술 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서양식 술문화가 메꿔 놓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거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삶 속에서 받은 고통을 술로서 잊으려고만 하는 그런 문화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긴 저도 술을 '취하려고' 마셨지, '즐기려고' 마실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군요. 그것이 제 속도 무지 버려놓긴 했었지요.
제대로 민주화의 과정으로 돌아간다면, 술로 세상 만사를 잊으려는 그런 일들도 적어질테지요. 우리의 술 문화가 망가진 것은 사실 이 폭음 문화에서 온 것이 큽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수많은 사회적 부대비용을 가져오게 될 수 밖에 없지요. 세상의 이런저런 부조리들 때문에 화가 나서 이를 술로 극복하려고 하는 세상이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역시 우리의 선택이 중요해집니다. 술도 '축배'로 마시는 게 낫지, 울화병을 달래려고 마시다가는 정말 몸 버리니까요.
제대로 된 술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제대로 선거합시다! 하하.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