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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을 보면 한나라당이 보인다.
내가 전여옥을 만난 것은 한겨레토론마당(한토마)에서였다. 한참 늦게 그 존재를 알게 된 인터넷 게시판 글쓰기에 심취해서 미친 듯이 글쓰기를 하고 있던 중, 나의 글에 누군가가 전여옥 글에 대한 반론을 써달라고 댓글을 달았다.
“전여옥? 전여옥이 누구지?” 하고서 싸이트를 둘러보니 온통 난리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나만이 문제의 글에 대해 모르고 있던 상황인 듯했다. 전여옥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다고 해서 조독마(조선일보 독자마당)엘 가 보았더니 거기에서는 찬양일색이었다. “허,허 한 사람의 똑 같은 글에 대해 이렇게 반응이 다르다니?”
문제의 글을 복사한 후 그 글을 원용하여 패러디 형태로 반박의 글을 썼다. 하도 시끄러워서 전여옥이 대단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글을 읽어 보고 난 느낌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이런 수준의 글을 쓰는 여자가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라는데 의아심이 들었다. 전혀 가다듬어지지 않은 생경한 말투, 상대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비열함, 거기에 작은 것을 크게 부풀리는 잔머리, 팬들의 수준을 미리 짐작하고 그들에게 환호성을 이끌어 내려는 선동적인 계산된 어휘 사용 등등에서 그 여자의 수준이 읽히고도 남음이 있었다. 경력을 보니 KBS 동경 특파원에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허, 참!”
그 글이 얼마나 조잡한 글이었는지 잠시 구경해보자.
//솔직히 대다수의 국민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는 심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보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음에도 놀랍기 그지없다.(‘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에 대해),
나이와 더불어 그의 토론실력도 ‘청문회 스타의 똘똘함’은 물론이고 대통령후보 때의 ‘겸손한 논리’도 완전히 빛이 바랜 채 파르르 떠는 성마름과 자기과시로 일관했다.(평검사들과의 토론에 대해)
그러나 그날 국민이 본 것은 개인적인 자잘한 섭섭함과 한을 풀지 못해 삐치고 핏대내고 열 받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KBS T.V. 토론에 대해)//
전여옥의 글에 반론한 내 글에 려운이란 분께서 “미친 년 널뛰듯이 날뛰는 그녀의 천박한 언행이, 정말 국민속의 대통령이 아닌 군림하는 대통령(박정희나 전두환)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녀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녀의 천박함과 교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댓글을 달아 놓았는데 적확한 표현이다.
어떻게 해서 “삐치고 핏대내고 열 받는 대통령”이란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그 뇌에 들어가서 해부해 보고 싶을 지경이다. 아, 그리고 전여옥은 고 노 대통령에 대해서 악담을 엄청 많이 쏟아 놨는데, 그중에서 압권은 “당신의 뇌를 해부하고 싶다. 인큐베이터에 다시 집어넣고 싶다” 등이다.
전여옥은 2002년 당시 어떤 연줄을 탔는지 정몽준 캠프에 속해 있었고, 정몽준이 일방적으로 노 대통령 지지를 철회한 후 어찌어찌해서 박근혜씨 밑으로 갔는데, 그녀의 신임을 독차지하며 비례대표 국회의원에다 최장수 당 대변인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2007년 대선에서 그토록 떠받들던 박근혜씨를 배신하고 2MB 진영에 가담하여 결국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사람을 볼 줄 모르는 수첩공주 박근혜씨의 자업자득이다. 아마 충격이 컸을 것이다. 2MB를 다시 또 배신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최근에 어느 싸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일본은 없다. 항소심을 끝내고 나서’란 유재순씨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은 전여옥이 재일 르뽀 작가인 유재순씨의 취재 내용을 도용하여 마치 그녀 자신이 실제 취재를 한 것처럼 쓴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마이뉴스의 박철현 기자가 그 표절 행위를 심층 취재하여 기사화했는데, 전여옥이 이를 문제 삼아 적반하장 격으로 5억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하였고, 이 소송에서 전여옥이 1심, 항소심에서 연달아 패소당함으로써 그녀의 파렴치한 행위가 법의 판결을 통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전여옥은 그야말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대통령이 소속된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으로서 그 자격이 넘치고도 남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셈이다. 한나라당 당원들은 거짓말을 잘하고, 치사하고, 얼굴이 두꺼운데 그 중에서도 최고로 거짓말을 잘하고, 최고로 치사하고, 최고로 얼굴이 두껍기 때문에 최고위원이 된 셈이니 어찌 전여옥을 보면 한나라당이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유재순씨가 전여옥을 만난 후에 그녀에게 당한 갖은 사기 행위와, 수모는 이루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자, 그 진실의 현장으로 가 보자. (전문은 중프라이즈( www.joongprise.com ) 자유 게시판 24736번 글 참조 바람)
//판결결과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5년 반 동안의 재판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분노, 억울함, 재판, 불면증, 신경쇠약 등등. 그래도 용케 견뎌왔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그래서 담담하게 그동안의 재판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중략.....
실제로 그랬다. 그녀는 거짓말의 천재였다. 그것도 얼굴색깔 하나 변하지 않고 아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했다. ...중략.....
원고(전여옥)가 일본에 간 지 한 2주 정도 지났을 때 유 재순이 원고를 NHK 지국 사무실로 찾아왔는데 당시 매우 남루한 차림으로서 장미꽃 몇 송이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원고는 유재순의 형편이 매우 어렵다고 들었고 그 차림도 허름한데 원고를 위해 꽃을 사온 데 대하여 놀랐으며 아울러 유재순에 대하여 호감도 갖게 되었습니다.(전여옥의 항소 이유소 중에서)
전여옥은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나를 아주 빈한한 유학생 마누라로, 그리고 일거리가 없는 여자로 전락시켜 버렸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일이 없는 것처럼 ‘그래도 여성은 일을 해야 한다. 열심히 쓰라며 격려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라고 큰 아량을 베푼 것처럼 묘사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100% 거짓말이다.
나는 전여옥을 만나는 첫날부터 내 지인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고, 이 같은 관계는 그녀가 특파원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게다가 당시 나는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80년대 중반 이후 몇 년은 매월 여성동아 원고를, 그 이후에는 우먼센스, 세계여성, 일요신문 등 시사주간지 원고를 번갈아 가며 쓰느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아사히 신문사 계열의 시사주간지 <아사히저널(현재휴간)>, 아사히그라프 등에도 일본르포를 쓰면서 그 틈틈이 다른 일본 주간지나 월간지에 칼럼까지 썼다. 또한, 매월 두세 차례씩 JAL항공사, 시민단체 등에 강연을 다녔다.(이렇게 바쁘게 일을 하는 그녀를 가난하고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몰다니....:거사) .....중략.....
뿐만 아니라 선의적으로 꽃을 사 들고 간 사람에 대해 마치 내가 대단히 가난한 유학생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묘사’를 했다. .....중략.....
아파트는 105,106호 두 개를 빌려서 살았고, 한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 만큼 대형 냉장고 두 대가 풀가동됐다. .....중략.....
그런 연유로 유학기간 동안 3년에 걸쳐, 매년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 7-8명을 초청하여 민단 조총련에 관계없이 재일동포들의 애환과 실상을 듣고 토론하는 심포지엄을 내 개인적으로 주최하기도 했다.
이때 의원들의 초청경비 및 진행에 드는 비용은 대략 300-500만엔 정도. 그 부담은 모두 내가 원고료, 강연료로 충당했다.(엄청난 돈을 썼네요. 3,000-5,000만원 정도? 그럼에도 빈한해 보였다니.....:거사) .....중략.....
하지만 도움을 준 것은 전여옥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여옥에게 내 일본인 인맥과 재일동포들을 소개시켜 주고, 그리고 집에 데려다 먹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