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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성탄절, 우리 가족들은 일식 부페인 '토다이'에서 화려한 성탄 만찬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1월중에 손님이 오실 예정이어서, 이곳에서 다시 식사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지요. 예약을 하려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불통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날 저녁 들어와서 "토다이가 문을 닫았대!" 라고 전해주어 순간 이 사람이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듣고 왔지 싶어서 '그럴리가 있냐. 바로 며칠 전에도 우리가 거기서 밥을 먹지 않았느냐'고 면박을 주었는데, 아내의 말은 분명했습니다.
"아냐, 닫았대! 신문에도 나왔대!"
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처음 '서브프라임 위기'로 시작됐던 미국의 경제 위기는 지금 시점에서 전혀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토다이는 괜찮은 가격에 온갖 해물들을 먹을 수 있어, 한인들은 물론 중국계나 다른 아시아계들은 물론이고, 주류 사회에까지도 잘 알려진 시푸드 부페였기 때문에 이 식당이 문을 닫은 것은 의외를 넘어선 충격이었습니다. 가끔 저는 와인 모임을 이곳에서 갖기도 했는데, 지난해 7월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인근에 위치한 레드몬드 토다이가 문을 닫아 섭섭했던 차에, 다운타운 시애틀의 토다이까지도 문을 닫게 됐다는 사실은 그저 식당 하나가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제겐 '추억의 상실'처럼도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거나, 지인들이 찾아오면 저는 으례 이곳을 찾아가곤 했고, 함께 추억을 만들곤 했던 것입니다. 와인 관련 카페들을 통해 만나 온라인으로 우정을 쌓게 되어, 그것이 오프라인까지 이어져 이 먼 시애틀까지 저를 찾아온 벗 치고 저와 함께 토다이에 가지 않았던 친구들은 없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갑자기 또 뇌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저를 반겨주던 토다이의 직원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던 웨이터, 웨이트리스 분들이 모두 저와는 특별히 가까웠습니다. 이곳에서 와인 모임을 가진 일이 종종 있었기에, 저는 '와인을 늘 들고 오는 희한한 손님'이었고, 이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담당 웨이터나 웨이트레스에게 팁을 직접 인사하며 손에 쥐어주는 손님이라 하여 그들도 제게 특별한 감사의 정을 전해주곤 했떤 까닭입니다.
태국계 종업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제가 손님들을 이끌고 오면 제 테이블을 서브하려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지요. 때로는 제가 직접 웨이터 이름을 지정하며 서브를 해 달라고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태국 웨이터 한 분은 제가 오면 가져가는 와인에 붙어야 할 코키지 비용을 다 빼주기도 했지요. 만일 문제가 되면 그 정도는 자기가 지불하겠다면서.
아무튼, 저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을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탄절 가족만찬때만 해도 그들의 얼굴엔 전혀 직장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구김살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도 아마 자신들의 며칠 후 운명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한 듯 했습니다. 만일 토다이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사전 공지도 없이 폐쇄하고, 그들이 직장을 잃었을 때, 그 종업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봉급이나 제때 받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토다이의 홈페이지엔 '지금 이전중이어서 죄송하다'는 공지만 떠 있었지만, 이곳 로컬에서 발행되는 신문엔 '토다이 본사에 문의를 해 보았으나 자세한 해명 없이 폐쇄했다는 것만을 확인해 주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다시 문을 열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촉발된 경제 위기, 즉 '허수의 경제' 가 '실수의 경제'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가수요와 실수요의 차이에서 빚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수요가 터무니없는 크기의 파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 허상의 성은 우르르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도 경제의 최일선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떠맡아야 하는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의 주요 도시들이 밀집되어 있는 킹 카운티- 시애틀, 벨뷰, 페더럴웨이 등이 포함돼 있는 - 에서 지난해 차압된 주택이 2008년에 비해 무려 6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곳 지역 뉴스에 따르면, 워싱턴주는 차압 증가율이 전국 평균인 20% 선 후반보다 훨씬 높아서, 35% 에 달하고, 그중 중심지역인 킹 카운티는 그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던 셈입니다.
이는 그 '가수요'만을 믿고 투자했던 이들의 붕괴가 지금부터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며, 아울러 중산층들이 가졌던 '불로소득'의 달콤한 꿈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실제적 삶도 무너져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당면한 문제 하나가 드러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레이거노믹스의 발흥 이후 생산자에게 금융 통치권까지도 이른바 '효율성'이라는 면죄부와 함께 주어진 것은, 미국 내 많은 대기업들이 더 큰 이윤을 좇아 자신들의 생산 공장들을 국외로 대거 이주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당연히 이어지는 결과로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돈맛에 취한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해고한 이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의 '소비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했고, 소비경제에만 취해 돌아갔던 미국은 이제 자신이 던졌던 부메랑에 자기 머리를 맞은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같은 구조의 문제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유통이 더욱 자유로워지면서 더 많은 개인의 비극들을 낳았고, 급기야는 경제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키울 거품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경제는 호전될래야 호전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토다이 레스토랑의 폐점을 보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쌓아 온 추억들을 그냥 송두리째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가슴아픕니다. 가끔씩 월급날이면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얼른 이곳으로 달려가 깜짝 파티를 해 주기도 하고, 부모님과 기쁜 시간을 갖기도 하고, 벗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그 추억들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기업과 금융자본의 탐욕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바닥까지 망가지는구나 생각하면, 이것이 몰고 올 파장이 정말 두렵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망가져가는 이 시점까지도, 세계 경제는, 특히 중국으로 상징되는 신흥 제조업 국가들의 경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소비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상황에서 소비를 늘린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고, 아무리 단기적 경제 지표가 좋아졌다고 말은 해도 실제 바닥에서 느끼는 경기란 이렇게도 암담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내가 이렇게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만 듭니다.
토다이가 다시 오픈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억이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샤토 그랑 마레쇼 2004, 불경기, 재해, 그리고 나눔
바람이 몹시 붑니다. 어젯 밤부터 분 이 바람은 큰 소리를 내며 비를 흩뿌립니다. 전형적인 서북미의 겨울입니다.
혼자 있는 집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모처럼 맞은 롱 위크엔드입니다. 쉬는 날인 까닭에 아침엔 아이들에게 햄 치즈 멜트 샌드위치와 핫초코를 만들어 주고, 저는 잘 우린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내가 일 나가고 나서, 자꾸만 레몬을 듬뿍 넣은 아삼 홍차가 당겨서 티팟에 말린 찻잎 넣어 두 잔째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조금은 달달하게 마시는 게 이럴 땐 좋은 듯 합니다.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걸까요?
이런 가정을 해 봤습니다. 내가 만일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었고, 책을 만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차분하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