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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배우 김여진과 날라리들이 정동영 의원 등과 처음으로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무려 35미터 높이의 선박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부산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리러 갔었다. 2003년 6월에 85호 크레인에 올라 10월 129일째 되던 날 김주익 위원장이 목을 맸었던 그 장소에서 여성노동자 김진숙 씨가 150여일째 농성 중이었다.
문상 다니는 시간이 잔업 다음으로 많았다는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씨의 꽃보다 귀한 목숨을 앗아간 악덕기업이다. 그런데 또 다시 김진숙 씨로 이어진 정리해고에 대한 투쟁사가 쓰여 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진숙 씨는 김주익, 곽재규 씨를 형이라고 호칭하며 그들이 산화되고 8년 동안 불을 떼지 않고 살았던 여성노동자이다.
그녀의 5개월간 크레인 위 농성투쟁은 충분히 위태로웠다. 또 다른 김주익이 탄생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추위와 외로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그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살리러 서울에서 단걸음에 달려간 것이 2011년을 달구었던 희망버스였다.
희망버스는 단순히 한진중공업 노동자나 김진숙 씨를 살리러 간 것만은 아니었다. 김주익, 김진숙 씨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의 평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35미터 차가운 망루를 오른 마음으로 달려간 희망버스였던 것이다.
그 희망버스는 2011년 다섯 차례 동안 연인원 4~5만 명의 일반 시민들이 탑승했다. 나는 2차부터 5차까지 갔었다. 한 여름의 장맛비에 젖고 땀에 젖으며 경찰의 최루 물대포에 젖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인권을 배운 학습의 장이었다. 오늘날 ‘길 위의 대통령’이라고 칭하는 정동영 의원의 트위터 호소가 계기가 되어 탑승한 희망버스였었다.
정동영 의원은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성사시키고 조남호 회장을 다그쳐 최종적으로 정리해고자의 복직을 합의하게 만들었다. 당시 청문회에서 조회장을 향해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라는 외침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또 국회 청문회 사상 재벌기업 총수를 처음으로 불러내었다는 것도 큰 화제였다. 그리고 김진숙 씨는 살아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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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쁨의 환호는 잠깐이었다. 한진중공업은 표변하여 복직의 합의를 1년이 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참패와 정동영 의원의 낙선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기업의 기회주의적인 태도에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다. 반성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진중공업이다.
따라서 한진중공업 민주노조는 회사 앞에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1.영도조선소 정상화 촉구 2.민주노조 말살정책 철회, 158억손배소 철회 3.단협해지 철회 4.성실교섭 촉구 5.휴업 종료 및 업무복귀 약속을 이행하라며 125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복수노조 제도 도입으로 친사측 새노조에 교섭협상권마저 빼앗긴 이들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한 영화인들의 제안으로 희망버스는 1년 만에 영도를 찾았다. 서울에서 약 서른 명이 왔고 대전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이 왔다.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도 삼삼오오 오는 등 해운대 영화의 전당 쌈지공원에는 오륙십 명이 모여 노래와 율동으로 해고자 복직 촉구를 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진 씨의 사회로 진행된 해운대 문화제에서 고 씨는 “투쟁하는 것도 힘들지만 지켜내는 것이 더 힘들다”며 복직약속의 이행에 대한 고충을 대변하였다. 영화산업노조 최진욱 위원장은 “이렇게 잘사는 나라에서 먹고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진 민주노조와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진 민주노조 차해도 지부장은 “이 영화의 전당은 한진에서 졌고 무슨 공법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데 씁쓸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며 희망버스 탑승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다. 또 “부산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고 희망버스 노이로제에 걸린 시민들도 있다”며 122일째 천막농성을 하는 처지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부산의 멧돼지’ 라는 통키타 가수의 노래 ‘MB의 추억’은 시대를 적확하게 그리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홍미혜 위원장, 진보신당 정준희 씨 그리고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제작사 대표인 김조광수 감독 등의 아픈 이야기와 다짐을 들었다. 부산 민주가요 동아리 ‘갈망’의 아침이슬을 다 같이 부르고 우리는 한진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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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차례나 희망버스를 탔지만 처음으로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 당도하자 지난해 그들이 한 일을 영화필름처럼 기억을 생경하게 되돌려 놓았다. 경찰차로 벽을 쳤던 한진중공업 벽을 멀리서 보았던 일부터 난생처음 최루 물대포를 맞아 피부가 망가졌던 일, 청학성당 앞 부둣가에서 풍찬노숙을 했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진중공업 앞에서 우리는 신나게 놀았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비보잉 댄스팀, 래퍼 GR, 집회전문 밴드(?) 등의 봉사에 감사하며 춤을 추고 즐겁게 놀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둥굴게 둥굴게 돌아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자정이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한상철 부지부장과 우리 팀은 마지막을 장식했던 6차 희망버스였다.
복기하는 차원에서 한진중공업 사측은, 1.영도조선소 정상화 촉구 2.민주노조 말살정책 철회, 158억손배소 철회 3.단협해지 철회 4.성실교섭 촉구 5.휴업 종료 및 업무복귀 약속을 이행하길 요청한다. 1차 희망버스 탑승자 수가 적었듯이 6차도 적은 수의 탑승객이었다. 이제 7차, 8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하길 바란다.
4.11 총선에서 야권이 제1야당을 내놓았지만 12.19 대선은 결코 내놓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챘다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제대로 기회를 잡기 바란다. 경제민주화의 깃발 아래 재벌개혁은 단행된다. 그리고 민주노조 깃발 아래 그들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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