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폰 카라얀한테 기자가 물었다.
"귀 오케스트라가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카라얀의 대답은 이랬다.
"세상 모든 오케스트라는 다 똑같다. 누가 지휘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 일류 교향악단을 만드는 건 마에스트로의 귀다.
그렇다면 일류신문은 누가 만드는가.주필과 편집국장이 누구냐에 따라 그 신문은 다른 신문과는 다른 신문이 된다. 카라얀의 귀가 베를린 오케스트라를 일류로 만들듯 명 주필 명 편집국장의 눈이 그 신문을 일류신문으로 만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안목을 말하는가.워싱턴포스트의 명 주필로 13년을 봉직해온 허버트 엘리스턴이 심장병으로 사퇴할 때 남긴 다음의 고별회견을 읽다보면 그 답이 나온다.
"한 국가가 안락이나 돈을 자유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면 그 나라는 자유를 잃게 된다."
영국작가 서머셋 모옴의 말에 기저를 둔 고별회견으로,편집인의 바로 이런 안목이 그 신문을 일류신문으로 만든 것이다. 적임 주필이나 편집국장을 못 찾을 경우 수입도 불사한다.
엘리스턴이 사임하자 그 신문은 후임 주필로 경쟁지 뉴욕타임스의 '대기자'로 명성을 날리던 제임스 레스턴의 영입을 추진한다. 소속신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레스턴의 고사로 무산되고 말지만, 여기서도 지켜볼 대목은 그런 대기자, 그런 안목을 줄곧 탐내는 일류신문의 자세다.
언론사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대통령 깜을 고르는데도 예의 안목이 절실함을 말하기 위해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신문사 주필 하나를 고르는데도 이렇거늘 항차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데 소 닭 보듯 할 일인가.
대한민국에서 괜찮은 대통령 소리 들으려면 백성들 등 따숩게 해주고 청년들 일자리 많이 만들어주면 된다. 욕심을 부려 한반도의 전쟁위험 없애고, 물가 잡고, 수출 늘리면 더 좋고…이 정도만 돼도 대통령으로서 60점은 된다. 과락은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안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안목을 말하는가.한마디로 때를 읽을 줄 아는 안목이다. 넉 달 전 신문에 소개된 뉴스 한 토막이 그 답을 제공한다.
6월 23일을 기해 한국이 2만 달러 소득, 인구 5,000만명의 '20-50클럽' 국가군에 진입했다는 낭보다.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에 이은 7번째 쾌거로,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1류 국가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예삿 뉴스가 아니다. 문제 또한 바로 이 대목에서 생긴다.
나라는 일류가 됐는데, 대통령은 기껏 면(免)과락수준의 2~3류에 머문다?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딜 주목해야할지, 그 안목을 정확히 가르쳐 주는 계시의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세 후보는 지금처럼 표심 잡는데 급급해온 허튼 공약일랑 당장 접어야 옳다.정치개혁? 어림없는 소리다. 안 될 짓만 골라 공약으로 내 거는 건 무슨 억하심정인가. 차라리 (당선되면) 국회의원 모두를 무보수의 명예직으로 바꾸겠다고 구체적 공약으로 예고하라.
이처럼 어느 후보 어느 공약을 봐도 이 나라를 장차 어디로 이끌지, 워싱턴포스트의 주필이 신문의 안목으로 '자유'를 표방했듯, 일류 대한민국에 걸 맞는 안목을 어디서고 읽을 수 없기에 하는 소리다.
하다못해 '정직과 용기가 강처럼 흐르는' 사회, '적되 강하고 아름다운' 국가로 격상시키겠다는 인문학적 안목이라도 보여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 대통령에 관한한 우리는 오랫동안 콤플렉스에 빠져 살아왔다.남아공의 만델라나 체코의 시인 하벨, 싱가포르의 리콴유 같은 외국에 대놓고 자랑할 일류 지도자를 갖지 못한 탓이다.
신문이 '안락이나 돈을 자유보다 더 중시할' 때 2류 신문으로 전락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지금처럼 치부나 속임수가 미덕이 돼온 나라풍토로는 일류자리는 길게 못 간다. 기껏 면 과락 대통령만으로는 더 이상 일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대선이 자칫 5년차 연례행사로 전락할까 우려해 하는 말이다. 언젠가 대통령도 수입하자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하는 소리다. - 10월 6일(토)자 한국일보 <토요에세이>
<김승웅:한국일보 파리특파원/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시사저널 편집국장/국회 공보처장/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