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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기본권 제한 위헌적 불심검문 부활
경찰이 2010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인권침해'라고 지적하자 일제검문 형식을 선별검문 형태로 전환하는등 과도한 불심검문을 자제하라는 경찰 수뇌부의 지침에 따라 사실상 폐지했던 불심검문을 요즈음 빈발하고 있는 칼부림을 자행하는 묻지마식 범죄와 아동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사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2년만에 부활시켰다.불심검문은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는 의심을 살 만한 사람을 경찰관이 정지시켜 질문하거나 소지품을 검사하는 행위다
경찰청은 9월2일 경찰관직무직행법 3조 ‘수상한 거동을 하거나 어떤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경찰관이 해당자를 정지시켜 질문하거나 흉기의 소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거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이달부터 대로상에서 불심검문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불심검문 부활과 관련하여 “흉기 등 위험물을 모두 적발할 수 없더라도 이런 휴대품을 경찰이 노상에서 불심검문한다는 사실만 알게 되더라도 범죄자들은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아울러 불심검문을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법에 명시된 ‘의무사항’을 내세워 인권침해 논란에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불심검문 부활을 찬성하는 의견도 있지만 신체자유 침해,헌법적 영장주의 위배 등 인권침해 소지가 높은반면 범죄예방 효과는 크지 않다며 반대의사를 밝히는 등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40만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를 두어 SNS 지존으로 불리는 일명'트위터 대통령' 유명 인기 작가 이외수 선생은 4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학시절 인제에 있는 집에 다니러 갈때면 검문소 이르러 어김없이 헌병들이 탑승,제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 했습니다.헌병들은 언제나 헛다리를 짚었습니다.저는 간첩도 탈영병도 아니었거든요.불심검문이 부활한다니 왠지 기분이 참 더럽습니다"는 말로 불심검문 부활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이외수 선생은"지금까지 불심검문을 안해서 강력범죄가 발생한 것일까요.아닙니다.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지고 가치관이 전도되고 도덕이 시궁창에 처 박혀서 생겨난 일입니다"며 인간의 존엄성,도덕성회복이 강력범죄 예방의 근본 대안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도 자신의 블로그에 “오늘 뉴스 보니까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주로 검사하겠다는데, 요즘 일어나는 범죄, 특히 성범죄는 흉기와 별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라며 “이웃집 아저씨가 어린애를 이불채로 싸갖고 납치해 가는 걸 불심검문으로 어떻게 막는답니까”라고 꼬집는 글을 올렸다.
불심 검문 당해 기분 더러웠던 날의 추억
이외수 선생의 더러웠을 기분 온몸으로 이해가 간다.국민 모두가 알아볼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을만큼 유명인사가 된 요즈음 이외수 선생을 불심검문하는 경찰이 거의 없겠지만 존성대명과 거리가 멀었을 젊은 시절엔 아마 모르긴 해도 이외수 선생도 경찰과 헌병의 불심검문의 '밥'으로 부족함이 없었을 터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당할때마다 기분 상상이 간다.
필자도 불심검문을 당할때 특히 수수한 옷차림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경찰의 주목을 받아 불평등한 검문 대우를 받을때 기분이 참 더러웠었다.그 더러웠던 기분때문에 2010년 2월에 썼던 칼럼을 다시 꺼내 더러웠던 날의 그 추억을 통해 불심검문 부활의 문제점을 재론해 본다.
그러니까 2009년 초여름 어느날 인사동에서였다. 인사동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왼쪽 길 옆가게 뒤편에 사각형으로 된 휴식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후배를 만났다. 운치있게 심어져있는 대나무가 그늘이 되어주고 앉을 수 있는 나무벤치와 바윗돌이 있어 담소를 나누기에는 안성마춤인 곳이다.
당시 그곳에는 후배와 나 그리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2명의 중년신사와 열심히 재잘대는 아가씨 3명등 세팀의 각자 다른 일행이 있었다. 중년의 신사들은 바윗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가씨들은 나무벤치에 그리고 후배와 나는 대나무 그늘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배는 동절복에 가까운 구형 스타일의 양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고급 때때옷 걸칠 처지가 아닌데다 양복체질 또한 아니어서 수수한 봄잠바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 10여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장 계급장을 단 경찰이 포졸2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경찰 손에는 무전기 같은게 들려있었다. 경장나리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한번 빙 둘러보더니 가까이에 있던 인사동 신사와 아가씨들을 제쳐놓고 멀리 떨어져 있던 나에게 곧장 다가오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하였다. 이른바 불심검문이었다.
주변사람들이 범죄인 보듯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민망스러웠지만 불심검문이 위헌인지 몰랐던데다 당시 용산참사 살인 진압경찰을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며 면죄부를 준데서 보듯 법과 질서를 앞세워 경찰을 홍위병으로 이용해 먹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통치 서릿발이 시퍼렀게 독이 오르던 때라 소시민인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주민증에 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건네준 주민등록증을 받아든 경찰은 손에든 무선장비에 번호를 눌러 조회를 한후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거수경례를 한후 주민증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곧장 후배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후배는 나와 달리 성미가 남달랐다. 목소리도 컷고 양팔을 허리에 짚고서서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목에 잔뜩 핏대를 올려 고함을 치면 상대방이 누가 되었든 대부분 꼬리를 내릴 정도로 한 성격하는 후배였다.
후배는 경찰이 나를 불심검문 할때 경찰을 쳐다보는 얼굴에 불만족스런 그림을 그렸었다. 벼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적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구형 동절복 차림을 한 후배를 만만하게 본 경찰이 주민증 제시를 요구하자마자 후배가 경찰의 면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당신들 내가 범죄자로 보여? 당신들 본업이 불심검문이야, 누가 시켰어" 얼굴이 핏발로 벌겋게 염색이 될정도로 핏대를 올리며 몰아 부치자 당황한 경찰이 "아,됐어요, 그만하세요"라는 말을 내던져 놓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갔다.
서민 민초 단골 불공평한 불심검문 기분 더러워
경찰의 이러한 무차별적인 불심검문은 2010년 인권위 지적이 있기전까지 이명박 정권 들어와 일상화 되다시피 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길거리,공원,버스터미널,전철역,다방,유흥업소,피시방등 사람의 왕래가 많거나 머무르는 곳은 시도때도없이 불심검문이 이루어졌다. 이런곳은 한마디로 불심검문 명당이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검문 대상을 철저히 가린다. 관용차와 자가용을 이용하는 강남 강부자 등 부유층은 거의 불심검문을 받지 않는다. 깔끔한 용모에 세련된 복장을 한 소위 말쑥한 신사숙녀도 거의 검문을 받지 않음은 물론이다. 불심검문 단골은 수수한 복장에 삶의 세파에 찌든 서민,노동자,행상등 민초가 대부분이다.
태어날때 부터 불심검문 팔자를 타고 난건지 아니면 경찰 눈에만 보이는 '불심검문'이라는 주홍글씨가 이마에 쓰여 있는지 확률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통계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잘난사람,부유층은 범죄자가 없고 못나고 없는 사람은 예비적 범죄자라는 경찰의 고정관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건 올리기에 그럴듯하면서 검문에 끽소리 못할만한 서민만 보이면 아귀처럼 달려들어 불심검문 몽둥이를 휘두른다.
재수없는 날은 하루에 두세번 당할만큼 능멸적이고 인권을 선별적으로 유린하는 불공평한 불심검문이다보니 국민들이 가지는 불심검문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않다.특이한것은 검문을 하는 경찰들 스스로도 불심검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여긴다.국민과 경찰 모두 불심검문을 치안질서 목적보다는 실적을 올리기 위한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2010년 2월 21일 원광디지털대 경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