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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아시아 평화주의자이며, 1만년을 전후하여 서남해가 바다가 되기 전 마고가 다스렸던 서남해 지역(완도=왕도)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윤복현은 단순히 국가주의 차원에서 한국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이 대동홍익이념으로 통치했던 지나.일본.몽골인들까지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마고.환인.환웅.환검.해모수.고추모.광개토태왕의 대통합의 길이다! 칭찬하고 훈장줘도 모자랄 판국에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홍익인간 윤복현을 영남신라우월.패권.독점주의에 빠진 나머지 비하.음해.매도하며 비아냥 거리는 어리석은 가짜 한국인들처럼 심리적으로 개인이나 국가.민족에 대한 열등감은 반드시 왜곡.날조.음해로 이어 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사 날조가 그것이다.
해(태양)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일본 국호는 본래 한반도인들의 태양신앙에서 비롯된 국호라는 사실은 일본의 양심적인 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즉, 해는 온누리를 비추는 광명의 상징으로 마고가 다스린 서남해인들의 의식으로 해민족의 광명의식의 뿌리가 되며, 전방후원분의 모양이 바다에서 해가 뜨는 모양으로 서남해 해양세력의 상징물이 해다.그래서 해세력이라는 것이고, 지나인들은 '해'를 '왜'라고 발음하여 지나문헌에 <왜>라고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해'는 1만년 전 마대륙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상징물로 인식되었다. 서남해 지역의 토착무덤인 전방후원분의 모양자체가 1만년 전 해양을 누비며 지구적으로 담로를 개척한 마대륙인들의 문양이라 할 때 서남해인들은 고고학적으로도 마고족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도에서 주인으로 살았던 마한인들을 기반으로 백제인들이 건국한 일본이란 국호는 일본 스스로 한반도 서남해에서 나온 마한의 해양세력 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표인 것이다.
일본은 자기들의 역사를 B.C. 660년부터 시작한다고 얘기한다. 일본이란 국호 자체를 A.D. 670년부터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하는데, 자기들의 역사를 고무줄처럼 막 늘여서 갖다 놓은 것이다. 우리 나라에 '단군의 역사'가 있으면 자기들 역사보다 더 앞서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가장 먼저, 우리 나라의 국조(國祖)와 상고사(上古史)을 부정한다. 그래서 일제는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신화란 단어를 만들어 유포하고, 우리를 곰의 자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한, 일제는 <삼국유사> 대목을 조작해서 고대 한국이란 나라의 실제를 슬그머니 한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즉, 한국→배달국→단군조선 7천년의 역사를 한인→한웅→단군 3대의 이야기로 축소해 버렸다.
이러한 민족사 날조와 세뇌된 한국인들을 위해 하늘에서 드러낸 민족정통사서가 있으니 바로 [환단고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년 인류사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사의 시원과 역사를 상세히 밝혀준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우매한 한국의 사학자들과 한국인인들이 있으니 어리석다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국가로 분열되어 있지만 한.지나.일은 고대 단군조선의 통치를 받았던 공동체다!
지나 문명이라는 것도 황하상류에 거주한 주나라 중심의 중화주의가 오랑캐 지역으로 비하,매도한 난하 동쪽 지역에서 기원전 7천년전까지 소급되는 홍산 한국문명이 발견되면서 결국 황하문명이라는 것이 한국문명의 줄기에 불과하다는 역사적 사실이 드러 났으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지나정부는 요서지역이 현재 지나영토라는 점을 악용하여 이러한 문명적 열등감에서 동북공정을 추진하여 지나문명이라고 날조왜곡하고 있다. 지나국의 양심학자들과 지나국민들은 지나정부의 이러한 비양심적인 역사왜곡날조에 대해 저항하고 항의해야 한다! 그리고 한류문화의 세계화에 힘입어 역사.문화.경제교류에 힘써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문명의 뿌리는 영산강 중심의 서남해 지역 마한의 해양.농경문화다.일본열도를 차지하는 전방후원분과 무수한 마한의 유적.유물이 바로 그러한 결정적인 고고학적 근거다. 전방후원분은 서남해 지역의 토착무덤이다.
가야.신라.백제 등 북방세력은 마한 이후에 열도로 이주한 세력으로 일본기마문화 세력이다. 한.일 악연관계나 영.호남 갈등과 대립의 역사는 백제와 신라까지 올라 간다. 즉, 나제동맹을 파기한 진흥왕이 백제성왕을 죽이면서 백제의 무왕과 의자왕 시기에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된 것이고 결국 당나라를 끌어 들여 백제를 정벌한 신라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하였고, 일본으로 태어난 백제가 본국회복의지를 가지고 이후 한반도 침략야욕을 그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나온 줄기 나라이기 때문에 역사적 열등감때문에 역사왜곡을 하게 된 것이고 안동.경주 김씨 등 신라후예들이 개혁군주 정조대왕을 독살(의문사로 보지만 엄연한 독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에 부패한 나머지 농민들을 수탈하고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당나라를 끌여 들인 신라처럼 청나라와 일본군대를 끌여 들여 진압하고 청나라와 일본에 붙은 정치모리배들이 결국 한반도를 놓고 벌이는 청.일 전쟁을 불러 온 것이고, 결국 일찌기 서양문명을 수입하여 자체 발전시켜 서구제국주의의 길로 나선 일본에 의해 전쟁에서 패하고 러시아와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결국 조선을 집어 삼키게 된 것이다. 고로 일제 36년 식민지 명분은 부패한 안동.경주 김씨 등 노론세력이 제공한 셈이다.
이러한 부패한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반드시 나라가 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증명한 것이며, 오늘날에도 부패한 영남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며, 음흉하고 꼼수 잔머리에 뛰어난 영남정치세력이 독도나 이순신을 악용하며 한.일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물이 바로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게 만든 영남 독재자 박정희이다.
다음은 최근에 일본인 학자들이 올해 100세가 된 원로 법학자이자 역사연구가자인 최태영 박사에게 한 충격적인 고백의 내용이다.
"우리도 다 안다.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 조작하였다는 것을. 일본이 이렇게 빨리 문명화된 것은 다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알렸다가는 자부심이 없어지고 기가 죽어 안되니까 거꾸로 해서 용기를 내게 했다. 기를 살려서 청일, 러일전쟁 이겼다." <일본인 학자들 고백>
"일본 사람들은 다 알고 속이는데 우리는 모르고 속고 있다. 우리만 모르고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 일본인들이 왜곡해놓은 대로 속고 있다" "일본땅에서 직접 일본인들의 역사기록을 숨겨놓은 현장을 목격했다. 우리의 잃어버린 사서의 대부분이 일본 황실도서관(정창원)에 주로 있을 것이다" <최태영 박사 증언>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 편찬하는데 필요한 일부 서적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다. 일제침략기에의 기록에 의하면 전국에서 수집해 태운 책이 3일 동안 경복궁에서 종이 타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 당시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그 정도의 양이면 거의 모든 책들이 불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상당수의 책들이 다시 복원,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양심 없는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토대의 붕괴를 우려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1922년 12월에 '조선사편수회' 즉,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료를 수집해서, <조선사(朝鮮史)>를 편찬한다. 그래서 1938년까지 본문만 35권이 되는 <조선사>를 일제가 만들었다. (사진은 한일합방조약 조인서)
거기에, 한국사람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이완용의 질손(姪孫)으로 당시 이완용은 고문 역할을 했다)로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의 수서관보(촉탁보조원)로 들어가서 우리 민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