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이 화제를 불러모은 것은 이제 7말8초도 추억을 논할만한 나이가 되었다는것
케이블 채널 tvN에서 자체제작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케이블 채널 tvN에서 자체제작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얼마전 적지않은 화제를 뿌리며 막을 내렸다. 케이블 방송의 역사도 어느덧 십수년에 이르면서 이젠 어느덧 지상파와 견줄만한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경쟁력을 갖춘 프로도 종종 생겨나기 시작했고, 케이블 방송이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도 이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기도 하지만 케이블에서 제작,방영한 드라마가 이 정도로까지 화제를 뿌린 경우는 아마 ‘응답하라 1997’이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헌데 이 드라마의 제목은 애초에 ‘응답하라 1994’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1997’로 바뀐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이 드라마에 90년대 후반 활동했던 아이돌 젝스키스 멤버였던 은지원이 캐스팅되면서, 차라리 이 드라마 시대적 배경을 아예 젝스키스,H.O.T등이 활동하던 시절인 1997년으로 잡는게 어떨까하는 제안이 있어 ‘응답하라 1997’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약간 장난스런 제목변경 같아 보이는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덕분에 ‘1997’은 너무나 절묘한 상징성을 갖추게 되었다. 한마디로 ‘응답하라 1997’이 되면서 어느덧 나이 서른을 전후해서 시집,장가가서 집에 아이가 하나,둘쯤은 있을 나이가 된 7말8초(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 세대의 추억코드를 제대로 건드렸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서기 1997년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징성이 있는 해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노동법,안기부법 사태로 막을 열어 한보사태,김현철 비리 파동등을 거쳐 대선정국과 IMF까지 이르는 그야말로 숨이 가쁠정도로 정신없는 대형 이슈들이 쉴새없이 터져나왔던 한해였고, 그해 말미에 있었던 대선에서 바야흐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한민국은 사상 첫 선거로 인한 여야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한해이기도 하다.
한편 사회적으로는 무엇보다 pc통신과 인터넷 그리고 호출기와 휴대폰등 첨단매체의 등장과 한바탕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던 시점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젊은 세대들에게서 pc통신 붐이 일기시작했던것이 90년대 중반의 일이고 하이텔,나우누리등의 pc통신 매체에는 수도없는 통신동호회가 생겨나기도 했던것이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pc통신이 쇠퇴하고 통신인구가 대거 인터넷으로 옮겨가기 시작한것이 90년대 후반의 일이다.
따라서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전환기가 시작된 시점도 대략 1997년 정도로 잡으면 될 것이다. 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의 통신매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던것도 대체로 90년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때 부터의 일. 한마디로 1997년은 정치적으로는 정권교체, 사회적으로는 첨단매체의 교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그 전환기로 상징할만한 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연예가를 놓고보면 앞에서 이미 잠시 언급했지만 젝스키스,H.O.T,S.E.S 같은 신세대 아이돌 가수들이 등장하며 팬덤문화를 이루기 시작했던 원년으로 봐야할 시기다. 물론 아이돌과 팬덤문화의 원조로는 대개 9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서태지를 꼽고 있기야 하지만 pc통신이 보급되면서 그와같은 첨단매체를 통해 청소년들의 팬덤문화가 보다 조직적으로 확산되던 시기는 아무래도 90년대 후반 젝스키스와 H.O.T등의 등장한 때를 시작으로 보아야할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바로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7말8초 세대’인 것이다.
7말8초에겐 어떤 세대적 특성이 있을까 ? 우선 흔히 하는말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두 이루어진 뒤에 철든 세대이기 때문에 독재나 가난등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거의 없는 세대다. 대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pc통신과 호출기란 새로운 요지경 문화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체구가 좀 더 어른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엔 pc통신대신 인터넷이 호출기대신 휴대폰이 생겨나 시절 자체가 21세기 새로운 고도의 첨단문명 시대로 더 한발자국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열거해놓고 보니 7말8초는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오직 풍요만 누리고 산 축복받은 세대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실상 7말8초는 바로 사춘기때 IMF의 직격탄을 맞은 바로 그 세대기도 하다.
IMF로 인해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실직하거나 다니시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나고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거나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아마도 두세집 건너 한집 꼴로는 간직하고 있을 세대. 감성 예민한 질풍노도의 시기때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보며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하고, 한보사태나 김현철 비리같은 정치권의 온갖 비리와 추문을 지켜보며 그와같은 부패하고 썩어빠진 날림 세상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충격 그리고 실망감도 어느정도 간직하고 있을법한 세대다.
그러한 7말8초에게 H.O.T와 젝스키스로 상징되는 1세대 아이돌과 팬덤문화는 그들이 받았을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충격과 분노를 잠시나마 잊게해줄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아니었을까 ?
하지만 필자는 그와같은 사회학적(?) 해석 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응답하라 1997’이 7말8초에게 불러일으켜준 추억코드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제야 십수년전 학창시절 즐기던 문화를 회상하며 그 시절을 기억하는 7말8초를 지켜보며 격세지감을 느낄법한 세대가 바로 필자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초창기였던 2천년대 초반엔 7080 추억문화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대개는 1970-80년대 사춘기와 성장기를 보낸 세대. 바로 486 세대에서 1970년대 초,중반 태생까지. 이들이 그들의 학창시절과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어느어느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을, 또는 어느어느 동네 구멍가게에 고이 숨겨져 있을법한 추억의 물건들을 끄집어내며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게 바로 2천년대 초반 7080 추억의 문화였다.
2천년대 초반이면 486 세대들이야 이미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나이였을것이고 1970년대 초반(1970-1974년생 정도) 태생들은 이제 20대 후반 내지는 바야흐로 30대 초반에 접어드는 그와같은 나이였던것이다. 개중엔 이미 결혼해 아들,딸이 하나둘쯤 있을 친구도 있었고, 또는 이제 막 결혼말이 오가며 청첩장이 오가는 그런 이들도 있었을것이다.
필자보다 나이많은 선배세대들 앞에서는 주제넘는 소위 외람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나이 40 가까이 살면서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니 대략 그런것같다. 바로 소위 ‘추억’이란게 처음으로 형성되고 생성되는 시기가 나이 서른 즈음한 그 나이때가 아닐까 하는. 나이 30 정도면 이미 고등학교는 졸업한지 10년이 지났고 따라서 사춘기때 즐기던 문화나 놀이는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조금씩 잊혀져가는 그 무엇이 되어있을 나이다.
생각해보니 7말8초면 필자보다 적게는 대략 7-8세 정도, 많게는 딱 10살까지도 나이차이가 나는 세대다. 그러다보니 참으로 격세지감과 함께 묘한 감회에 젖어드는것이다. 필자 또래의 나이대 네티즌이 10년전 나이 서른에 접어들었을 무렵 7080 추억거리에 빠져들었던것처럼, 어느덧 10년세월이 지나서는 이제 7말8초들이 그네들의 학창시절이었던 90년대 후반의 추억에 잠기기 시작하는 시절까지 왔다는 사실에.
추억이란게 따지고보면 그런것 같다. 결국 똑같은 세대가 똑같은 시절을 보내면서 공유했던것들, 즐기던 문화가 있었고 그런것들 속에 서로 공감대를 느끼는 정서가 있는것. 그게 바로 추억인것 같다. 그러고보니 필자가 어린시절 우연히 라디오 프로를 듣는데 방송을 진행하던 한 나이 40쯤 된 아나운서가 이런말을 한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