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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의 영토 분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침략의 과거사를 둘러싼 국가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분쟁의 주범은 일본이다. 일본인 중에서도 우익 정치인들이 그 분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익이 아닌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우경화 일색의 발언을 한다. 주변국과의 영토문제에 대해 대다수 일본인들이 우익 정치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침략과 학살과 종군위안부 등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인식도 일본 국민 사이에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그와 함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너희의 모든 문화는 우리 것'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봤다. 이 동영상에서 한국인은 유교, 한자, 가부키 등 주변국의 문화유산을 표절해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동영상을 올린 이용자는 "표절의 주된 희생자는 일본이지만, 최근에는 그 마수가 중국에까지 미치고 있다"며 "세계인들에게 이를 경고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썼다. 이런 동영상들 옆에 나타나는 '관련 동영상' 목록에도 터무니없이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동영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왜 일본에게 질 수밖에 없는가'라는 동영상은 "한국인들의 할머니는 일본군의 위안부였기 때문에 지금 한국인은 일본 혈통을 가진 것"이라며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단체 '반크'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이버 테러단체'로 묘사하거나, "낙후되고 가난했던 한국이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해 겨우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들도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한 달쯤 뒤인 지난해 4월 일본의 서점가에서는 <일본인의 긍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익 에세이작가인 후지와라 마사히코가 쓴 이 책은 '난징대학살' 등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관한 내용이 자학사관에 의해 과장됐다거나, 동아시아 침략이 제국주의 시대인 당시 상황에선 침략이 아니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의 일본사회에는 일본국기인 히노마루,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욱일승천기 등 일본 '군국주의 아이콘'이 요란하게 부활하고 있다. 얼마 전 런던올림픽에서는 욱일승천기 문양이 국가대표 체조팀의 유니폼에 버젓이 사용됐고,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에서 일부 관중들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 했다. 욱일승천기는 침략을 상징하는 나치 문양에 견줄 '군국주의 아이콘'이지만 지금은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일본', '강한 일본'을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위험한 애국주의 열풍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다. 아사노 겐이치 도시샤대 교수는 "공영방송이 일본의 과거 침략·강제점령을 긍정하는 소설을 버젓이 드라마로 만들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최근 사회 분위기는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며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공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화 '러브레터'의 이와이 ??지 감독은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일본은 일찍이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했다는 사실을 너무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상대국 잘못만 따지고 있으니 상대국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한 일본 누리꾼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뤄지는 반일 교육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하다가 끝내 미국과 전쟁을 벌여 패했고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침략당한 나라가 아직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며 잊어버리고 있는 일본이 미친 것"이라는 소신 발언을 했다.
영토분쟁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시기에 나온 한 영화감독의 용기 있는 발언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인 대다수에게는 깊은 분노를 안겨준 모양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발언이후 그를 매국노로 몰아부쳤다고 하니 말이다. 위험한 영토분쟁의 끝은 전쟁밖에는 없다. 일본은 과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인가.(한국일보 9월26일자)
<김명곤/전 문화관광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