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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이 ‘피에타’(Pieta·사진)로 올 베니스 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탈리아어로 동정과 연민을 뜻하는 ‘피에타’는 마리아가 자기 무릎 위에 누운 죽은 예수를 내려다보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만든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의 이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피에타’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데 김기덕은 자신의 많은 영화에서 종교적 의미와 함께 도덕성과 궁극적 구원을 추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사채업자에 고용된 혈혈단신의 피도 눈물도 없는 해결사 강도(이정진) 앞에 어느 날 자신을 강도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조민수)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모자간의 괴이하면서도 코믹하기까지 한 드라마다.
김기덕의 특성대로 어둡고 폭력적이며 또 잔인하고 충격적인데 자본주의의 폐단을 통렬히 고발하면서 아울러 용서와 희생과 구원을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용서와 희생이 복수의 수단이 되고 있다.
‘섬’ ‘수취인 불명’ ‘사마리아’ ‘나쁜 남자’ 및 ‘빈 집’ 그리고 ‘피에타’까지 김기덕의 영화는 자학적이며 가학적이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김기덕은 사디스트로 여성 학대증자이기도 하다.
나는 자기 세계와 예술성을 고집하면서 여느 영화들과 다른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의 줏대를 존경한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애쓰는 예술가다. 그러나 ‘피에타’를 보면서도 느꼈듯이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지난 2004년 7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홍보차 LA에 온 김기덕을 만났을 때 그의 작품의 폭력성에 관해 물었다. 그는 이에 “나는 어두운 것을 통해 밝은 곳에로의 출구를 찾고 있다”면서 “내 폭력은 어둡지만 유머가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봄, 여름…’은 미 비평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기덕의 영화로 미국서 흥행도 잘 됐는데
나는 그가 이렇게 아름답고 심오하고 또 재미있고 보편타당한 주제를 지닌 영화를 좀 더 자주 만들기를 기대한다.
김기덕은 다소 궤변론자이긴 하나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저돌적일 정도로 솔직한데 그의 영화들도 발가벗겨 놓은 듯이 적나라하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유럽에서 환영을 받는 반면 한국 관객들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그의 영화의 불편함에 있다고 본다.
내가 김기덕을 만났을 때도 그는 “제 영화는 한국에서 안 봐요”라고 툭하니 한 마디 내뱉었는데 급기야 지난 2006년에는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내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 없다”는 폭탄선언을 했었다.
내가 김기덕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 ‘수취인 불명’을 출품했을 때였다. 그 때 그와 나는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면서 그의 인생과 영화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는 내게 자신의 불우했던 성장과정을 들려준 뒤 “나는 관객과 비평가들을 생각 않고 나의 노선을 걷겠다.”면서 “대중성이란 참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외면하는 까닭은 우선 전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현상에 있다고 본다.김기덕도 나와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해 “관객 수 1,000만 시대가 왔으나 이런 수치는 앞으로 제작자들이 더욱 이익에만 집착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영화계가 너무 블록버스터에만 매달려 독립영화들이 살아남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정서적 나태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창조적이요 관객에게 도전하는 영화에 대응하면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고 깨닫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고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왜 돈 주고 영혼의 고단을 겪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별 뾰족한 대답이 없지만 인간의 예술적 감각이나 정신은 고단하지 않고서는 쇄신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김기덕의 영화가 어두운 것은 그의 성장과정과 관계가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그의 영화는 어두움의 미학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뒤틀린 한 풀이로도 보여 진다.
김기덕은 대상 수상 후 “이젠 내 영화도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언젠가 만난 또 다른 ‘유럽파’인 홍상수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그 때 내가 그에게 그의 영화의 한국 내 흥행성에 관해 묻자 그는 “제 영화는 보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요.”라며 흥행에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김기덕이 한국 관객과의 화해를 꾀한다면 관객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제공해야 한다.아니면 아예 홍상수처럼 오불관언하던지. ‘피에타’의 마지막 구원을 위해 1시간 반 동안 신체절단과 폭행과 강간과 욕설과 똥 그리고 피와 자살을 견뎌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관객만 탓할 것도 아니다. ‘피에타’는 한국의 2012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박흥진/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헐리웃외신기자협, LA영화비평가협 회원/hj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