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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不能早歸德義。但養頑兇。斯則聖上於汝有赦罪之恩。汝則於國有辜恩之罪。必當死亡無日。何不畏懼于天。況周鼎非發問之端。漢宮豈偸安之所。不知爾意終欲奚爲。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완악하고 흉악한 짓만 늘어간다.이에 임금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있었는데, 너는 국가에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다.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하물며 주(周)나라 구정(九鼎)은 혀끝에도 올려 물어볼 말이 아니요, 한(漢)나라 궁궐이 어찌 도둑질하여 머물 곳이랴. 너의 생각을 알수 없으니,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이 단락은 비교적 평이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다만, 주목할 부분은 ‘황주정비발문지단(況周鼎非發問之端) 한궁기투안지소(漢宮豈偸安之所)’,즉 ‘하물며 주(周)나라 구정(九鼎)은 혀끝에도 올려 물어볼 말이 아니요, 한(漢)나라 궁궐이 어찌 도둑질하여 머물 곳이랴.’의 부분인데,
이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주정(周鼎)은 구정(九鼎)으로도 불리는 고대 중국의 왕권의 상징인 신물(神物)입니다.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가 구주(九州)에 명해 모은 금을 가지고 주조한 9개의 정(鼎)으로(당시 제사 지낼때 선비는 1개 또는 3개의 정(鼎), 대부(大夫)는 오정(五鼎), 천자(天子)는 구정(九鼎)을 사용함), 하(夏)나라가 멸망당한 이후 주(周)왕실의 소유가 되었으며, 이후 구정(九鼎)은 주(周) 왕조 37대에 걸쳐서 보관 유지되었고, 그것을 가지는 것이 곧 천자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 52년 서주(西周)를 공격하여 구정(九鼎)을 탈취하였는데 운반도중 사수(泗水)에 빠트려 분실합니다. 그 뒤에 진시황(秦始皇)이 이 사수(泗水)의 주정(周鼎)을 꺼내려고 1천 인을 동원해서 물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고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시황 28년 BC 219년).왕권의 상징인 구정(九鼎)이 없어진 시황제(始皇帝)는 새롭게 옥새(玉璽)를 새겨 새로운 황권(皇權)의 상징으로 삼게 됩니다.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No. 2에서 ‘包藏禍心(포장화심) 竊弄神器(절농신기)’,즉 ‘불측한 마음을 품고, 신기(神器)를 넘보다’란 표현이 나왔는데, 이 표현중 ‘신기(神器)’도 바로 이 구정(九鼎),
다시 말해 구정(九鼎)으로 대표되는 황제의 지위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정비발문지단(周鼎非發問之端)’, 즉 ‘주(周)나라 구정(九鼎)은 혀끝에도 올려 물어볼 말이 아니다’란 표현은 무엇을 말하는가? 황소(黃巢)가 살았던 당(唐)나라때는 구정(九鼎)이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습니다. 따라서 없어진 구정(九鼎)의 행방을 물어봤을 리는 없는 것으로서,
이 문장의 의미는 다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좌전(左傳). 선공3년(宣公三年)>에 의하면, 당시 춘추시대 제후국들 가운데서도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의 세력이 가장 강하였습니다. 천하를 엿보기 시작한 장왕(莊王)은 어느해 오랑캐를 토벌한다는 구실로 주나라의 수도인 낙양(洛陽) 근처까지 진출합니다.
그 기세에 놀란 주(周)나라 정왕(定王)은 대부(大夫) 왕손만(王孫滿)을 보내 장왕(莊王)의 노고를 위로하였는데, 이때 장왕(莊王)은 왕손만에게 주나라 왕실에 있는 구정(九鼎)의 크기와 무게에 대하여 묻습니다(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 이 물음에는 주나라 왕실이 정(鼎)의 크기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허약해졌으므로 자신이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례한 질문에 대해 왕손만은 "정(鼎)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덕(德)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비록 주(周)나라의 덕이 쇠하였으나 아직은 천명이 바뀐 것이 아니니, 정(鼎)의 경중을 물을 수 없습니다(周德雖衰, 天命未改, 鼎之輕重, 未可問也)"라고 대답합니다.
곧, 왕권을 상징하는 정(鼎)의 크기와 무게는 정(鼎),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진 사람의 덕(德)에 달려 있으므로, 주(周)나라가 부여받은 천명이 바뀌지 않는 한 이를 넘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직 그 때까지는 주(周)나라의 권위가 남아 있었으므로 장왕(莊王)은 무력만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서 철수하고 마는데, 이 고사가 바로 ‘문정경중(問鼎輕重: 정(鼎)의 무게를 물어보다)’의 사자성어를 낳은 유명한 고사입니다.이후로, ‘문정경중(問鼎輕重)’이란 바로 ‘제위(帝位)를 감히 엿보는 행위’를 뜻하는 표현이 되는데, 최치원은 이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주정발문(周鼎發問)’으로 살짝 바꾸어 표현한 뒤, 뒷부분에 ‘지단(之端)’이란 강조의미의 조사를 덧붙여, ‘주정비발문지단(周鼎非發問之端)’, 즉 ‘제위를 엿보려는 털끝만큼의 마음도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한궁기투안지소(漢宮豈偸安之所)’란 표현입니다. 당(唐)나라시대에 왠 ‘한궁(漢宮)’이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데, 원래 한(漢)나라는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건국당시 장안(長安)에 수도를 정합니다. 이후,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후한(後漢)때 낙양(洛陽)으로 수도를 옮기지만, 다시 동탁(董卓)때 장안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당나라는 이 유서깊은 장안(長安)에 수도를 정해 통치를 해 오고 있었으므로, 최치원은 ‘한궁(漢宮)’이란 표현을 통해 ‘한(漢)나라 이후 전해오는 유서깊은 궁’이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서깊은 궁궐’이 어찌 너같은 자가 감히 도둑질하여 머물 곳이겠는가?(偸安之所) 라고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8. 汝不聽乎。道德經云。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天地尙不能久。而況於人乎。又不聽乎。春秋傳曰。天之假助不善。非祚之也。厚其凶惡而降之罰。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회오리바람도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도 하루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 천지가 하는 일도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에야!”라고 하였다.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하늘이 나쁜 자를 도와주는 척하는 것은, 그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더 쌓게 하였다가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문장에서는 고전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인용(引用)이 등장합니다.이러한 인용을 할 경우, 인용하는 문구가 현재의 상황에 딱 들어맞아야 하는 법인데, 어쩌면 이렇게 적확(的確)한 문장을 찾았을까 경탄스럽습니다.
먼저 인용한 부분은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天地尙不能久(천지상불능구)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부분까지로, 아래처럼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23장, ‘허무편(虛無篇)’에 나옵니다. 많은 해설서들이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까지만
<노자(老子)>에서 인용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23장
希言自然(희언자연) : 자연은 말이 없으나,
故飄風不終朝(고표풍부종조) : 회오리 바람도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 소낙비도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
孰爲此者(숙위차자) : 누가 하는 일인가?
天地(천지) : 바로 하늘과 땅이다.
天地尙不能久(천지상불능구) : 천지가 하는 일도 오래가지 못하는데,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 :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에야!
주지하시는 바입니다만, <노자(老子)>는 어렵습니다.심오한 철학이 들어있어,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철학자의 영역에 속합니다. 위의 문장 부분중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은 바로 첫머리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