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원장이 제 18대대선후보로 나섰다. 1년여 동안 장기간 숙고 끝에 이뤄진 일이다. 대선출마는 19일 낮 3시에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 아트홀에서 있었다.
구세군 아트홀은 527석의 중규모 장소였다.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 비해 왜 이렇게 좁은 장소를 택했을까 싶을 정도로 혼잡한 인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층까지 빼꼼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모를 보니 거의가 카메라맨들 아니면 컴퓨터를 무릎에 얹어 놓고 있는 사람들 일색이었다. 말하자면 펜과 마이크를 가진 여론 주도층이었다는 거다. 홀에 입장시킬 계층을 치밀하게 계산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취재준비에 바쁜 언론사를 위해서 11시경부터는 회견장소의 출입을 허용했다고 한다. 허니 일반인 중에서 좌석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아마 서너 시간 전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번을 탄 사람들이었을 게다. 이도 극히 일부분이지 싶다. 장내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으니까 말이다.
안철수 원장을 돕고 있는 실무진과 청춘콘서트로 대변되는 대학생 자원봉사단 100여명과 주최 측으로부터 정중하게 초대된 VIP 멘토단들, 그 외 좌석은 메이저급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 그리고 기타 언론인 일색인 것 같았다. 무대를 중심으로 양 옆과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는 모조리 방송용 기기와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에워싸고 좌석은 수첩과 노트북을 든 즉 펜대를 쥔 저널리스트들이었다. 여기에 아주 극소수의 시민이 섞여있을 뿐이라는 거다.
본 기자는 출마선언식 40분 전쯤에 도착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건물로 들어서자 사람들로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리를 뚫고 출입문에 이르자 “좌석 없습니다. 취재기자석 외에는 자리 없습니다!” 라는 소리를 연신 외치며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2층 계단 쪽으로 고개를 쳐들자 갖가지 모습을 한 사람들이 층층이 서있긴 마찬가지였다. 태극기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무작정 서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기자증을 내밀고 ‘press'라고 써진 출입증을 받아들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이럴 수가?” 신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수백 대의 카메라가 차고 넘치고 있었다. 이런 데 적당한 말은 “이 많은 기자들이 오늘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선출마선언을 한다면 모조리 나팔을 불어대겠지!”하는 것과 “최단신 뉴스가 틀림없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질 거야”라는 단 두 마디일 것 같았다.
3시가 임박해오자 한 작달막한 사나이가 카메라 후레쉬를 받으면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나이는 경직된 표정을 잠시 짓고 나더니 사람들을 향해서 인사를 한다. 이어서 연단에 섰다. 순간, 대한민국의 무엇이 1m67cm가 채 될까 말까한 저 오동통하고, 이제 막 얼굴 근육이 늘어지기 시작한 40대 후반의 작달막한 사나이한테 저리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나 싶었다. 이 나라의 정치 현주소였다. 갖가지 회한이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갔다.
사나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중략)
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습니다!
“저 사람의 입에서 드디어 ‘제 18대 대선에 출마하겠다!’라는 말을 들었구나.” 그런데 대통령 출마자들이 던지는 출사표란 일견 뻔한 게 아닌가.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 또한 무슨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거다.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는 본인이야 처음 하는 일이니 가슴이 벅차고 어깨가 무겁고 만감이 교차할 것이지만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구경해본 국민들은 간단치 않은 감정이며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정치지형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90일 동안 무슨 난리가 날 것인가. 어떤 변수들이 대한민국을 흔들어댈 것인가.
역시나 판에 박은 순서가 이어졌다. 김빠지는 순서이기도 한 질문자도 미리 정해진 요식행위다. 약방에 감초처럼 던져지는 기자들의 낯익은 질문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뻔했다. 그중 후보자에게 재 뿌리는 질문은 지금 막 대선출마를 선언한 사람에게 ‘야권단일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이다. 때를 같이 해서 지난 2007년 대선 때 자행한 친노들의 행태가 떠올랐다. 친노 이해찬과 한명숙과 이해찬의 비서 출신인 유시민의 행태다.
이해찬의 아바타인 한명숙과 유시민은 이해찬을 대권 후보로 만들기 위해서 미리 각본을 짜놓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이해찬을 엄호하기 위한 자작극을 벌였다. 그런데 지금도 동어반복이 계속되고 있다. 재탕 삼탕의 자작극과 친노 문재인을 중심으로 단일 화 되길 바라는 각본 말이다. 친노들의 이런 술수 때문에 민주당 정신은 말라버리고 그 좋던 야성은 지금 썩은 생선처럼 냄새만 풍기고 있다.
지난 연말 민주당의 야권 통합과정과 4.11총선 전후에 벌어진 친노들의 민주당 농단행위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의 민주당 농단으로 인해 야권과 이 나라 정치는 지금 제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다. 모바일 투표의 근소한 차이로 이해찬이 난데없이 당대표 자리를 꿰찬데 이어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친노 문재인 역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자리를 꿰차고 나서 친노들은 민주당과 국민을 그들의 정치농단의 쇼 마당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차제에 안철수 원장의 대선출마 선언식에 기자들이 하는 질문이란 것이 친노 문재인과의 단일화 운운하니 이 나라의 정치후진성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친노들이 이 나라의 헌정사에 지은 죄와 친노들의 정치농단 쇼가 또다시 우리 헌정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을 보면서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안철수가 권력의지가 없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겠는가?’ 문재인이 권력의지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 문재인과 김어준 류의 친노 홍위병들은 2007년부터 깜냥에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그 증거로서 문재인은 친노의 정파색으로 짙게 화장을 하고 친노에 의한 친노 구태 정치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대선판에 모바일꼼수라는 검을 휘두르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여기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자 수구꼴통인 보수의 아이콘이다.
그나저나 어쩌나. 이번에야말로 더욱더 경상도 출신에 의한 경상도후보끼리의 대결이 됐으니 말이다. 그 무슨 재미로 이런 대선판을 또 관전하란 말인가. 이도저도 참 마땅치 않다. 신이 나지 않는다. 언제 경상도 정권 50년을 끝나고 지역 등권시대가 올 것인지 그 바람은 요원하기만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