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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상을 당해 갑작스레 뉴욕에 다녀 온 지 며칠 됐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장례미사하고 하관을 했으니,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 된 셈입니다. 초상 때문에 일주일간 제 라우트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더니 엉망이 돼 있었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배달된 잡지나 소포들을 찾아다 가져다주고, 채 배달되지 못했거나, 혹은 분류가 잘못된 편지들을 꺼내어 정리하고 재배달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제 라우트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불평들이 대단했습니다. 왜 우편물이 제때 안 오느냐, 왜 내 우체통이 아닌 다른 우체통에 내 우편물이 들어가 있느냐, 이런 질문들을 꽤 들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쏘리 포 유어 로스" 하면서 손을 잡아 주고 인사치레들을 합니다.
그리고 어제는 안철수 씨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있었고, 그 며칠 전엔 문재인 후보가 공식적으로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이 됐습니다. 마음이 짠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어쩌면 둘 다, 정치하고는 상관 없었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그 둘을 불렀습니다. 저는 이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두 인물을 세상에 불러낸 것입니다.
이미 지난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명박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 모든 몰상식과 퇴행이 불러낸 것이 바로 이 두 사람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이명박이나 그 주변에 몰려 있는 인물들 따위하고는 전혀 비교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인품으로만 봐도 87년 양김의 실수를 되풀이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진 인물들이 배신을 때리고 독자 출마한답시고 나서진 않을까, 이런 일들을 걱정하는 것이 현실과 가까울 거라고 봅니다. 이들이 나와서 표를 깎아먹는것보다, 단일화의 이미지를 구겨버리는 것이 문제일 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입니다. 제 경우, 겨우 일주일 비웠던 라우트에서 잘못 배달된 편지와 소포를 거둬들이는 데만 이틀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것 조차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나라를 경영하는 일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안철수 소장이든, 문재인 후보든 간에 대통령이 되면,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가 잘못해 놓은 것을 올바로 되돌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들이 지겠다는 짐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제 라우트를 말아먹은 동료들은 아마 제 라우트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이명박과 그 주변의 인간들은, 정책 운영의 미숙은 둘째치고라도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됐던 것이 사욕이라는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만일 제 라우트를 대신 배달해 주던 우체부가 아주 나쁜 놈이어서, 손님들에게 배달되어야 할 수표나 소포들을 잘못 배달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가 그걸 꿀꺽해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이게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그런데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는 그런 일들이 거의 일상처럼 일어났던 것이고,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챙겨 먹겠다고 붙은 군상들도 말하자면 그런 일로 '한밑천 잡은' 셈입니다. 국민들에게 공적으로 돌아가야 할 것들을 사적인 주머니로 챙겨먹은 그런 일들까지 생각한다면, 차기 정부가 치워야 할 똥은 아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로까지 전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 모두가 참 안쓰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들을 믿어주고, 또 지지해 줘야 합니다. 이명박 시대에 일어난 이 수많은 퇴행과 몰상식, 그리고 국가를 사적 이익 창출의 도구로 쓴 횡령 범죄단 수준의 정권이 저질러 놓은 것들을 제자리로 되돌리는데는 시간도 꽤 걸리고, 노력도 많이 들 것입니다. 그것을 안철수나 문재인이라는 인물들의 어깨 하나에만 걸어 놓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게 만든 것은 결국 사적인 욕심에 멀었던 국민들 아니었습니까. 여러분들이 잘못 찍은 표, 혹은 그 중요성을 망각하고 그냥 포기하고 버려버린 그 한 표가 어떤 식으로 여러분에게 돌아오는지를 알았다면, 적어도 그 짐 만큼은 나눠 지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안철수, 문재인, 두 분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두 분의 현명한 단일화, 그리고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