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후보가 지난 16일 후보수락연설을 통해 ‘책임총리제’를 언급했다.
물론 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문 후보는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공동정부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이 집권하면, 총리직을 줄 테니 자신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를 하자는 요구인 셈이다.
한마디로 ‘권력 나눠먹기’ 제안이다.
앞서 문재인 후보는 경선 직전에 안철수 원장에게 ‘공동정부’를 제안 한 바 있다.
문 후보가 제안한 공동정부는 일종의 ‘유럽식 연합정부’와 같은 것이다.
즉 서로 다른 두 세력이 연합 정부를 구성하면서 향후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 나갈 것이냐 하는 점을 명확하게 문서화 하자는 제안이다.
그 일환으로 문 후보가 이번에는 ‘책임총리’를 언급했다.
결국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공동정부를 만들되,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한 사람은 총리를 맡자는 제안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철수 원장이 총리를 맡고,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문 후보가 총리를 맡자는 것이다.
따라서 문 후보가 비록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권력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사실 문 후보가 ‘담판’으로 후보단일화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데에는 ‘책임총리’가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실제 문 후보 측은 정치협상을 통한 담판을 선호하고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뤄진 이른바 'DJP 연합'과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교수가 조건 없이 무소속 박원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문재인 후보 경선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온 노영민 의원과 우윤근 의원은 모두 ‘담판론’에 무게를 실었다.
노 의원은 1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정권교체를 위해서 후보단일화는 반드시 필요한데 후보단일화의 방식은 국민이 감동하고 대선승리의 길로 가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어떤 길이 대선승리로 가는 길인가를 두고 많은 이견이 있을 순 있는데 담판에 의한 단일화도 그 중에 하나이고, 꽤 설득력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우윤근 의원도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구체적인 방법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간에 서로의 갈등을 촉발하는 것은 양쪽이 다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갈등을 유발하는 경선보다 담판에 의한 단일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하자면, 문 후보가 안철수 원장에게 ‘책임 총리를 시켜줄 테니, 그거 먹고 나가 떨어져라’하는 제안 아니겠는가.
과연, 이 같은 제안이 올바른 것인가?
아니다. 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지지층이 상당수 겹치기는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권력 나눠먹기에 합의한다면, 그런 민심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룸에 따라 이른바 ‘종북 세력’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주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민심이 ‘종북세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후보단일화를 통해 그런 선택을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직 실체가 검증되지 않은 안철수 원장에게 ‘책임총리’를 제안하면서 공동정부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정말 걱정이다.
설사 그런 ‘권력 나눠먹기’를 통해 집권을 한다고 한들 그런 정권이 국민 앞에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그런 정권이 과연 올바른 인사를 단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인사정책의 실패로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공동정부는 그보다 더 잘못된 인사정책을 할 개연성이 높지 않은가.
총리가 이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도 ‘책임총리’라는 것 때문에, 권력을 나눠먹기로 이미 합의 한 사실 때문에 그를 교체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까?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