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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실감할 때도 됐습니다. 하지만, 일에 치인 저는 그 한 해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흘러가는 '매일 매일'을 그냥 숫자로만 느낄 뿐입니다.
12월의 우체국은 바쁩니다. 지난해보다는 낫지만, 올해도 그렇게 3-4년 전의 크리스마스 때처럼 바쁘지는 않습니다. 과거 이맘때쯤이면 우체국은 임시 직원들이라도 뽑아서 잔뜩 쌓인 우편물들, 특히 소포들을 나르느라 정신 없었을 것입니다. 우체부가 된 첫해 성탄엔, 전 일요일에도 일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도 소포가 많다 보니, 레귤러 우체부들의 일거리를 줄여주고자 소포만을 따로 배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오버타임 같은 건 누구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경기는 나빠졌습니다. 사설 배송기업 DHL 은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해 이미 오래전 미국 국내 서비스는 더 하지 않고 해외 배송 서비스만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자상거래의 증가가 소포 배달 증가를 불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파이가 그렇게 기대한만큼 자라지는 않은 셈입니다. 아니, 사실 그 파이란 것이 거품에 의존해서 자라 왔으니, 허상이 깨지고 나서 보이는 실체란 것이 사실 별것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것 뿐이죠.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경제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제라는 것이 생산이라는 실물의 가장 중요한 열쇠고리를 쥐지 않고 있다면, 결국 아무리 자라봤자 다 허상이고 신기루일 뿐이란 것을 지난해와 올해 두 해동안 계속해 실감하는 셈입니다.
레이거노믹스 정책 이후, 생산을 담당했던 자본의 한 축들은 금융업에 뛰어들면서 돈의 단 맛을 알게 됩니다. 규제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겠다며 레이건이 추진했던 정책들은 어쩌면 이 세계를 그저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야바위의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지요. 생산에 전념해야 할 기업들이 신용카드 발행을 통해 이자 놀이를 하게 되면서, 그들의 주업이었던 것들은 부업, 심지어는 취미로 변질되고 맙니다. 전 세계가 '비자카드'의 깃발 아래 실질적으로 통합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거죠.
생산이 적체되고 허풍만 늘어난 경제의 곪집이 지난 몇해동안 썩고 썩다가 기어이 터져 버렸습니다. 신기루를 쫓던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버리는 상황들은, 요즘도 계속해 볼 수 있는 숏세일, 차압매물 세일의 광고, 그리고 주택들 앞마당에 박혀 있는 세일 말뚝으로 드러나는 듯 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비가 전 세계 생산을 주도하는 억지스러운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불황이 계속된다면 이것이 계속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업들)이 더이상 자기 자본을 해외에 투하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경제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체제를 세우고, 그 체제가 망가져야만 살아날 수 있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습니다.
후세에 우리 모습은 어떤 식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20세기 말부터 생산경제가 아닌 이자놀이로 키워진 경제는 결국 사방에 일부러 거품을 만들어 억지로 성장을 시키려다가, 그 한계에 부딪히자 건드려서는 안 될 '부동산' 까지 건드려가면서 자기 증식을 꾀했고, 그러다가 결국 더욱 큰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자멸했다고 쓰일까요...?
하긴, 지금의 성장방식과 생산방식만을 놓고 보면, 우리에게 '파멸'이란 단어는 자명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정된 자원, 늘어나는 인구, 그리고 돈이 되든 안 되든 간에, 또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 일단 모험적으로 자원을 써 가며 대량으로 생산해 가격을 맞춰버리는 시스템 안에서, '고갈'이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번영'이란 것이 '끝없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더욱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새벽,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저는 지난 달보다 말뚝 박혀 있는 집이 너댓개가 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동산 붐이 조장되어야 했다는, 그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얼른 정신 챙기고 일 나가야겠습니다. 이렇게 제 육체로 일할 수 있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