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有狐(유호)’라는 시를 소개드리겠습니다.모두 3수의 시인데, 동일한 내용이므로 2수만 소개드립니다.
有狐綏綏(유호수수) :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在彼淇梁(재피기량) : 저 기수(淇水) 다리 위를 걷고 있다.
心之憂矣(심지우의) : 마음 속 근심은,
之子無裳(지자무상) : 그대에게 바지가 없는 것이네.
有狐綏綏(유호수수) :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在彼淇厲(재피기려) : 저 기수 얕은 물을 걷고 있다.
心之憂矣(심지우의) : 마음 속 근심은,
之子無帶(지자무대) : 그대에게 두를 띠가 없는 것이네.
이 시는 <시경>의 여러 詩들중 해석이 분분한 시중 하나입니다.여러분들도 읽어보신 후 뜻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이처럼 해석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시경>의 시들이 당시 민초들의 애환을 노래하다보니, 체제 저항적이거나 반전(反戰)적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고,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이 시의 가장 오래된 해설인 <모시서(毛詩序)>를 보면,‘有狐(유호)’는 풍자한 시이다. 위(衛)나라에서 남녀들이 혼기를 놓치거나,배우자를 잃는 경우가 있었다. 옛날 나라가 전쟁을 겪거나 흉년이 들어(사람들이 많이 죽으면), 예법을 무시하고 다혼(多昏)을 시켰으니,친척이 없는 남녀들을 한곳에 모아 살게 하여 아이들을 낳게 하였다.《有狐》,刺時也。衛之男女失時,喪其妃耦焉。古者國有凶荒,則殺禮而多昏,會男女之無夫家者,所以育人民也。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자(朱子)도 이러한 모시(毛詩)의 해석 연장선상에서 해석하길,여우는 요망하고 사특한 짐승이라...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그 배우자를 잃으니, 과부가 홀아비를 보고 시집을 가고자 함이라.그러므로 여우가 홀로 가는 것에 의탁하여 말하고,그 치마가 없음을 근심함이라.狐者 妖媚之獸...國亂民散 喪其配耦有寡婦見鰥夫而欲嫁之 라고 하여, 이 시를 혼인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대 학자들의 해석은 어떠한가? 위에서 말한 고전적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고 있습니다.먼저, 이 시의 해석을 좌우하는 것은 ‘여우(狐)’와 ‘바지(裳)’ 또는 ‘허리띠(帶)’등의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인데,<시경>의 다른 시들을 참고할 때 모두 ‘전쟁’과 연관된 단어들로 보고 있습니다.예컨대, <패풍(邶風)>의 ‘북풍(北風)’이란 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여우(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莫赤匪狐(막적비호) : 붉게 보이는 건 여우 아닌 게 없고,
莫黑匪烏(막흑비오) : 검게 보이는 건 까마귀 아닌게 없네....
其虛其邪(기허기사) : 어찌 여유(虛)를 부리랴...
旣亟只且(기극지차) : 어서 빨리 떠나리라.
즉, 여우나 까마귀는 전쟁에 동원된 민간인들, 다시 말해 ‘종군자(從軍者)’를 뜻하며,붉은 옷과 검은 옷은 각국군대를 표시하는 색깔로서,전투가 막 시작되려는 위급한 상황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또 다른 시, <소아(小雅)>의 ‘하초불황(何草不黃)’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匪兕匪虎(비시비호) 뿔소(兕)도 아니며 범(虎)도 아니거늘,
率彼曠野(솔피광야) 저 광야를 달리는가.
哀我征夫(애아정부) 아아, 우리 부역 간 사내들이여,
朝夕不暇(조석불가) 아침저녁도 쉬지도 못하도다.
有芃者狐(유봉자호) 꼬리가 긴 여우여,
率彼幽草(솔피유초) 저 깊은 풀 속을 가도다.
有棧之車(유잔지거) 사다리가 있는 수레여,
行彼周道(행피주도) 저 큰 길을 가도다.
위의 시에서는, 자신들 같은 일반적인 ‘종군자(從軍者)’들(뿔소, 범, 여우 등으로 비유)은 숲속을 헤치면서 힘들게 행군하는 한편,장교들은 편안히 마차를 타고 도로 위를 질주함을 풍자하여 읊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有狐(유호)’에서 등장하는 ‘옷(衣)’, ‘바지(裳)’, ‘허리띠(帶)’등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음의 시, <진풍(秦風)> ‘무의(無衣)’편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與子同裳(여자동상) 그대와 더불어 바지를 같이 하리라.
王於興師(왕우흥사) 왕이 군사를 일으키시거든,
修我甲兵(수아갑병) 내 갑옷과 병기를 수선하여
與子偕行(여자해행) 그대와 함께 행군해 가리라.
豈曰無衣(기왈무의) 어찌 (싸울 때 입을) 옷이 없다 하는가?
뒷날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의 용맹함이 느껴지는 민요입니다.여기서 보듯이, ‘옷(衣)’, ‘바지(裳)’, ‘허리띠(帶)’등은 바로 갑옷 안에 받쳐입는 전투용 옷을 의미합니다.따라서 이상에서 살펴 본 ‘여우(狐)’ 및 ‘바지(裳)’의 의미를 가지고 다시 ‘有狐(유호)’의 시를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옵니다.
어슬렁거리는 다른 ‘종군자(從軍者)’들이 눈에 띕니다.그러자, 겨울을 날 변변한 속옷 바지하나 하지 입지 못하고 전쟁터로 떠나간 남편에 대한 걱정이 갑자기 밀려드는 것입니다.이런 관점에서 다시 ‘有狐(유호)’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有狐綏綏(유호수수) : 여우(종군자)가 어슬렁어슬렁,
在彼淇梁(재피기량) : 저 기수 다리 위를 걷고 있다.
心之憂矣(심지우의) : (저 사람을 보고 떠오르는) 마음 속 근심은,
之子無裳(지자무상) : (전쟁터로 떠난) 그대에게 (변변한) 바지 하나 없는 것이라네...
<하태형/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원장/경제학박사(뉴욕주립대)/고전(古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