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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에 '효자'가 있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를 효자라고 칭송한다. 그는 결혼한 뒤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부모님 댁 가까운 곳에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 온 그는 직장에 다닐 때에도 퇴근하면 부모님 댁에 먼저 들렸다가 자기 집에 가곤 했다. 퇴직 후에는 집 근처에서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매일 부모님 댁에 들러 집안일도 돌보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오곤 한다.
그런데 요즘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숨도 차고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 하시고 치매끼도 생기셨다고 한다. 그게 걱정스러운 그는 더욱 자주 들르고 더욱 오래 부모님 댁에 머무른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씩도 들른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 온 일과이기 때문에 그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을 당연한 일과로 삼아 지내고 있다. 친구들은 요즘 누구도 그렇게 극진하게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 없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은 효자 자격도 없고,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겸손해한다.
그런 그가 남모르는 고민을 나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부모님 댁에 매일 가는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직하고 나서는 그게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자기 가족들로부터 점점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며 효자를 왕따시키는 가족들이 나쁘다고 비난했더니 뜻밖에도 아내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 편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친구들 중 '효자 남편'하고 사는 부인들은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엄청 시달린다는 얘기를 여러 사례와 함께 들려주었다. 어떤 부인은 남편하고 별거하고, 어떤 부인은 홧병으로 시달리고, 어떤 부인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결혼 전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내는 시부모와의 갈등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런 아내에게 그럼 만약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내가 친구처럼 부모를 매일 찾아 뵙는다면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 시부모 댁에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내들이 수두룩한데, 매일 가는 남편을 둔 아내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느냐는 것이다. 함께 안 가더라도 아내의 심적인 부담은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반문을 했다. 그럼 만약 우리 아들이 결혼해서 일주일에 한 번도 안 오고 한 달에 한 번쯤 우리를 보러 온다면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한 달에 한 번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매일 문안을 와서 며느리와 가족들에게 미움 받고 왕따 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요즘 그런 아들이 어디 있으며, 기대하는 엄마도 정상이 아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딸의 남편이 될 사위는 자신의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찾아 뵙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참 어려운 문제"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아내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남편과 아내들은 이런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아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가정 안에서 점점 병립할 수 없는 갈등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효자'와 '마마보이'라는 호칭의 차이도 애매모호해졌다.
예전에는 사회구성원의 가장 높은 덕목으로 칭송 받던 '효'가 지금은 골치 아픈 문제꺼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효의 기준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 노인 문제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기대하는 효의 기준과 자식들이 제공하는 효의 기준이 다른 데서 생긴다.
내 친구는 현대의 효자로서 칭송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마마보이로 왕따가 되어야 하는가. 참으로 '효자' 되기 어려운 세상이다.
<김명곤/전 문화관광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