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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의하면 조계종이 지난 12일 '불교 파괴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과 정치 공작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회견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회견문에서 조계종은 "최근 검찰 조사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직접 '양상군자(梁上君子)'가 되어 은밀히 총무원장과 종회의장 등 종단 주요 지도자들을 불법 사찰해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장로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초기부터 있어온 불교계와의 갈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종교간 화합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기독교[註1]인구가 급증하면서 지금은 인구의 거의 30%가 개신교(18.3%) 또는 가톨릭(10.9%) 신자로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과 동 티모르에 이어 동 아시아 세 번째의 크리스천 국가가 되었다. 이는 기독교 인구가 1%인 중국이나 1-6%인 일본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대폭 증가하면서 전통 종교인 불교가 2위로 밀려 현재 인구의 22.8%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교세의 변화 추이를 감안할 때 두 종교 간의 갈등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톨릭과 불교 간에는 별 마찰이 없이 상호 교류도 하는데 개신교 일각과 불교 간에는 갈등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수 년 전 미국인 지인 L여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L여사는 1960년대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선교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였는데 한국과 인연이 있었던지 한국인 유학생과 결혼하여 다시 한국에 와 정착해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자녀들과 함께 한국의 유명 사찰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대웅전에 따라 들어오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교회에서 절은 우상 숭배하는 곳이라고 배웠다는 것이다.개신교 선교사 출신인 L여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녀는 딸들을 그들이 다니던 한국 교회에 못 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는 별로 놀라운 얘기가 아니었다.서양인들 중에는 종교에 관계없이 불국사, ‘반가사유상’등 한국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보고 찬탄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한국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중에는 불교를 우상 숭배 종교로 치부하고 불교와 관련된 것이면 무조건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20년간 국내외에서 한국 개신교회를 다니던 나로서는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마다 속으로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의 해외 홍보에 종사하던 나로서는 이들의 이러한 불교에 대한 인식이 어떤 이유에 연유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말 까지 천년 이상 사실상 우리나라의 국교 역할을 해온 불교는 혜초, 원효 등 뛰어난 학승들을 배출하면서 동아시아와 우리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우리 민족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또 기독교 예술과 유적을 빼놓고는 서양 문화를 논할 수 없듯이 불교 예술과 유적을 빼놓고는 우리 전통 문화를 말할 수 없다.
종파를 뛰어 넘어 국민적 추앙을 받으며 종교간 화합에도 앞장섰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5월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제13회 심산상을 받고, 수상 강연을 통해 “유교는 불교와 더불어 동북아시아 문화의 사상적, 정신적 바탕을 이루어 왔고 제 몸 안에도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산 김창숙 선생의 수유리 묘소를 참배하면서 “민족의 스승께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빌면서” 큰절을 두 번 하였다. 추기경이 유교식 절을 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큰 울림을 남기는 말이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 영향을 준 계몽주의 영국 철학자 John Locke(1632 –1704)는 유럽 종교 전쟁 후 발표한 그의 저술 “관용에 관한 서간문(Letters Concerning Toleration)”에서 종교적 관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즉 “지상의 심판관들은 -특히 국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경쟁하는 종교적 관점의 가설을 신뢰할 수 있게 평가할 수 없다”(Earthly judges, the state in particular, and human beings generally, can not dependably evaluate the truth-claims of competing religious standpoints.)라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적 독선을 경고한 명언이다.
[註1]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 하면 흔히 개신교와 동의어로 쓰는데 이 글에서는 영어 ‘Christian’이 의미하는 가톨릭, 개신교 등을 총칭하는 뜻으로 썼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Christian’을 ‘그리스도교’라고 번역한다. 이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예로 우리 언론의 외신 보도에서 ‘베이루트의 기독교 지역’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베이루트의 가톨릭 지역’을 의미한다.
<손우현/한림대 교수/전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사무총장, 청와대 공보비서관,주(駐)프랑스 공사 겸 파리문화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