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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아내와 함께 차고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차고 정리를 하고, 그리고 방안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찾아 차고 세일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은 어지간한 미국인들에겐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우리에겐 솔직히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이 차고 세일을 한번 해야 할 것 같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래서 제 차를 드라이브웨이에 놓아두고 시작한 차고 청소가... 쉽게 끝나지 않을 성 싶습니다.
당장 차고 안에서도 우리는 이것이 앞으로 써야 할 물건인가 아닌가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오리건 주에서 살면서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에 녹음했던 테입들을 잔뜩 담아두었는데 저는 이걸 기념으로 놔두고 싶어하고, 아내는 이건 버려야 할 거라고 말하고, 또 아내가 지호 지원이를 낳고 쓰던 아기 배내옷이나 혹은 언젠가 쓰겠다고 세일할 때 산 파라핀 배스 같은 것은 제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보통은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 가르칠 때 싸우다가 이혼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서로 청소를 하면서 꽤 말다툼을 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서로 관점이 틀리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겠지요.
그러나, 둘이 티격태격거리면서 느낀 건, 우리가 정말 진작에 버렸어야 할 것들을 치우지 않고 쌓아두다가 이런 힘든 사태를 맞았다는 겁니다. 아는 지인 한 분은 "안 쓰는 거면 금덩이라도 버려! 그게 청소의 가장 기본이야!"라고 했지만, 이 '버린다'는 것도 골라내가면서 버려야 하니 문제인거죠.
예를 들어, 예전에 디지털 카메라를 사기 전에 찍어서 현상해 놓은 사진들 중 정리되지 못한 것을 찾아냈을 때, 이것을 그냥 두면 틀림없이 정리 안 하고 이대로 둘 거 같고, 그렇다고 그것부터 붙잡고 있자니 할 일은 태산이고, 또 이 사진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함께 고민하자면 틀림없이 할 일도 못할 것이고, 그러니 결국은 사진은 다시 원래 찾아낸 그 박스로 돌아가고, 그러면 그 박스는 틀림없이 또 꽤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건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과감히 버리고 공간을 만들어내자니 그건 더더욱 못할 일입니다. 이런 식의 고민들이 우리의 일의 진척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이런 식의 합의는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을 좀 멀리 잡고, 여유를 가지고 정리할 물건들은 따로 두자고. 어차피, 이제 곧 아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쑥쑥 커서 대학에 가게 되거나, 자기들의 삶을 찾게 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도 그때쯤이면 이런 것들을 찾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생길 거라는 믿음 같은 걸 가지고 살자고.
그리고 그때까지는 이걸 어딘가에 깊숙이 두자고. 아내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분명히 일에는 완급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다행인 건 우리 부부가 서로 말이 통하고, 생각도 통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대화를 통해 이런 것들을 조절하는 것에 꽤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역사란 것도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가 완급을 두고 빨리 치웠어야 할 것들, 그리고 진작에 버렸어야 할 것들, 그리고 좀 두고 봐야 하는 것들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해 결국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우리가 실은 조급증 때문에 빨리 결과를 보고자 했던 것은 사실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정리해야 했던 것들은 아닌지. 그리고 진작에 확 버려버렸어야 할 쓰레기들을 그냥 끼고 살았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쓰레기를 제대로 치워내지 않고 방치하면 반드시 벌레가 꼬이고 병균이 창궐합니다. 역사 안에서 치워내지 못한 쓰레기들을 방치한 채 진행됐던 민주화는 지금 다시 창궐한 그 병원체들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그것은 분명히 그 방치된 쓰레기가 놓여 있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심하면 죽게 만들 겁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그래서 민주화가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개혁들이 있고, 거기서 완급을 조절해 가며 '가장 먼저 할 것'들을 찾아 신속하게 '치워주는 것'이 요구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쓰레기가 물론 지금도 넘쳐 흐르지만, 적어도 어떤 쓰레기들을 먼저 치워야 하는지 정도는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경험으로 우리는 대략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치워버려야 할 지난 시절의 잔재들, 그리고 우리가 몸에 배어 있는 체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들까지도 싹싹 치워버리고 닦아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더이상 과거의 청소 못한 잔재들이 우리의 앞날을 막도록 놔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켜야 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을 찾아 구별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