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23일 대전에서 열린 이노비즈 글로벌 포럼에서 '기술 환경에서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10대 시절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립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암호 풀기, 복잡한 코드 해독 등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잡스는 워즈니악보다 컴퓨터에 조예가 깊지 않았지만 사업적으로 성공시킬 아이템을 가려내는 탁월한 안목과 고객들이 그 제품을 열망하게 만드는 마케팅의 천재였다. 그런데 대중들은 잡스를 편애했다. 혁신적인 기술을 창조한 워즈니악보다 그 기술을 상품화한 잡스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잡스에게는 '카리스마·혁신·창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대중들은 오로지 그의 말과 제스추어에 열광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기술혁신에 몰두한 워즈니악은 대중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워즈니악이 1980년대 말에 애플을 떠나자 수많은 루머들이 양산됐다. 두 사람의 스티브가 애플의 성공신화를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성격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빚다가 결별하고 원수지간이 됐다는 스토리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워즈니악은 몇 년 전에 펴낸 자서전 <아이워즈>(IWOZ)에서 자신이 애플을 세우고도 말단 엔지니어로 일한 것이나 새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애플을 나온 것이 잡스와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뒤늦게 '괴짜 천재' 워즈니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도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
이번 초청도 그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가 강연에서 언급한 몇 가지 문제가 평소 나의 관심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매우 흥미로웠다. 먼저 그는 기술혁신을 예술에 비유하며 "일상에서 얻어지는 예술적 요소, 경험, 수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혁신이며 이런 과정은 일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와 관련해 창조적 성취를 위해 가져야 할 자세로 그는 자서전에서 '그레이 스케일'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멋진 것을 만들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설정해 놓은 인위적인 틀에서 벗어나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 있는 회색 영역인 그레이 스케일 세상에 살아야 한다"고 한 그의 말은 기술혁신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아직 깊은 성찰에 이르지 못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울림을 준다.
그는 이어서 혁신을 위한 창의력과 교육의 관계에 대해 역설했다. 창의적 인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은 창의력을 계발하는 법을 잃었다는 점"이라 비판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아이디어를 짜낸 교육체계만이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창의력을 길러준다"며 교육체계 혁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는 애플을 나온 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만큼 인재교육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미래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자서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박애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며 수많은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 괴짜 천재 백만장자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권 소송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를 상대로 디자인 등록, 사용자환경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삼성전자는 애플이 3G 통신 특허를 침해했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과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의 소송에는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쓰이고, 그 비용은 결국 제품 값에 얹어져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특허권은 창의성의 대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지만 너무 남용되면 오히려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독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술혁신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예술의 역할, 창의성을 잃어가는 교육제도, 지적 재산권의 남용에 대한 스티브 위즈니악의 의미 있는 경고는 현재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혁신을 위해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김명곤/전 문화관광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