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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 달 전쯤 용산에 사무실을 하나 마련했다. 용산역을 기준으로 전자랜드 있는 쪽이다. 창밖을 내다보면 태양열을 이용하는 빌딩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옛 국제그룹 사옥이 우람하게 서 있다. 용산역 건물에 가려 드러나지 않지만 그 바로 옆이 용산참사 현장이다. 좀 멀리 바라보면 관악산과 그 위를 날아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독서와 사색을 목적으로 얻은 사무실이기에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하게 된다. 사무실로 가려면 용산 전자상가를 지나가야 한다. 몇 달에 걸쳐 관찰한 바에 의하면 전자상가는 주말에 가장 붐빈다. 붐비는 원인의 상당한 몫은 토종 한국인들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른 외국인들이 제공한다. 외국인들 중에서 용산 미국기지에 주둔한 주한미군의 비율은 굉장히 낮은 듯하다. 용산 전자상가를 찾는 외국인들은 대개가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계통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들의 대화내용을 나는 당연히 모른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악의 저출산 국가라고 한다. 출산파업이라고들 하는 이야기가 세간에 떠돈 지가 벌써 오래 전부터이다. 지금의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당사자가 원해서 ‘인종청소’를 실시한 나라나 또는 민족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미혼남녀의 비율이 2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고려할 때 출산율이 반등하기를 바라는 일은 당분간은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는 짓이 될 전망이다.
다시 용산 전자상가로 돌아가자. 외국인 손님이 내는 돈이나 우리나라 손님이 내는 돈이나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머금고는 고향의 가족에게 보낼 소중한 첨단 전자제품이 선물로 담겼을 커다란 박스를 들고서, 용산역과 전자상가를 연결하는 길고 좁은 구름다리를 걸어가는 외국인들을 대하면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객쩍은 구경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쇼핑 나온 외국인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았을 전자상가의 판매상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바닥을 기는 출산율은 한국사회의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다. 동시에 어느 쪽도 바람직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난제이기도 하다. 보수우파나 진보좌파나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토종 한국인의 선의와 결단에만 의지하는 이유에서다.
2. 나는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 모두에게 철저하게 적대적인 입장을 줄곧 견지해온 터다. 그럼에도 전자도 후자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허나 참여정부도 MB정부도 특단의 저출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는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른바 토종 한국인들의 자녀들에 대한 기대치가 터무니없이 높은 탓이다.
토종 한국인들은 아들을 낳으면 자식이 빌 게이츠나 타이거 우즈처럼 출세하기를 바란다. 딸이 태어나면 아이가 퀴리 부인이나 김연아 같이 성공하기를 원한다. 다들 구제불능의 과대망상에 빠졌다고 하겠다. 김연아, 퀴리 부인, 타이거 우즈, 빌 게이츠를 자녀의 역할 모델로 삼은 인간들한테 아무리 출산을 권유해본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보자. 남의 자식 데려다가 키우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제 핏줄 제발 세상에 남겨달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인륜에 관계된 기본적 의무조차 힘들다고 외면한다면 그건 인생 자체도, 인생관도 막장인 거다.
빌 게이츠나 타이거 우즈처럼 출세하지 않아도, 퀴리 부인이나 김연아 같이 성공하지 못해도, 단지 평범한 한국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만족해할 사람들이 지구상에는 넘쳐난다. 자기 아이 가지는 걸 온갖 사회적 조건들을 핑계로 들먹이며 기피하고서, 해외여행 가서 사진 찍어와 미니홈피에 올리는 게 삶의 낙인 현재의 토종 한국인들은 이미 노예와 마찬가지 존재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이다. 제 새끼 낳는 일조차 싫어하는 한국인의 썩어빠진 정신상태가 아이 대신에 이명박 정권을 출산하고 만 셈이다. 이명박은 국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채찍질을 한다기보다는 국민이 노예로 타락해 있는 까닭에 채찍을 휘두른다. 2MB의 ‘강남독재’ 체제는 원인보다 결과로 나타났다고 봐야 옳다.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새로운 인류, 즉 신인류의 출현이 최선책이다. 혹자는 소위 88만원 세대의 대오각성에 희망을 거는 모양인데 이들은 탑골공원서 “빨갱이 때려잡자!”고 게거품 뿜어대는 노인네들보다도 더 답이 안 나오는 집단이다. 88만원 세대에게 월급으로 880만원 준다고 혼인해서 아이 낳을까? 그 돈 죄다 해외여행 다니고 명품 구입하는 용도로 써버릴 게다. 화려한 싱글이라고 뽐내면서 말이다.
고구려는 말갈을 품었기에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대국으로 도약했다. 고려는 발해유민을 떠안았기에 강적인 후백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군사적 기반을 갖출 수가 있었다. 여진족 출신 기마병이 없었다면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기 어려웠다. 탈북주민이건, 연변동포건, 사할린교민이건, 미얀마 망명자들이건, 몽골리언이건, 아프리칸이건 상관하지 말고 전부 받아들이자. 세금 내고 군대 가겠다면 무조건 한국국적을 부여하자. 국가가 무슨 혜택을 베풀어도 대한민국에는 절망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은 채 평생 동안 ‘Enjoy’하면서 살겠다는 부류에게는 단돈 1원도 쓰지 말자.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가슴 뿌듯하고 환희에 찰 사람들이 바다 건너 외국에는 수백만 명이 있다. 어쩌면 지구상에 수천만 명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토종 한국인들에 의해 천대받는 한글과 한국어를 학습하려는 의욕과 열정으로 충만하다. 뉴요커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토종 한국인들과는 달리 한국 안이라면 강북이든 강남이든, 대도시든 농어촌이든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서건 터를 잡고 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식을 쾌락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저주하지 않는다. 신이 내린 은혜로운 축복이라며 감사해한다. 한국으로 주저앉을 것이냐?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것이냐? 우리는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나의 의견에 파시스트라고, 국가주의자라고 이의를 제기할 분들이 물론 있을 줄로 안다. 내가 해주고픈 항변은 딱 한 가지다. 순혈주의 똥간에 내버리자는 파시스트나 국가주의자 구경한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