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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돈의 맛’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이 시대 최고의 맛’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돈의 맛’은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탐욕, 탐닉,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영화로서 강렬한 재미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돈의 맛이란 어떤 건가? 영화홍보 기자회견 중 여주인공 김효진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그는 동덕여고 재학 시절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출연료를 받았을 때 이야기를 했다. 난생 처음 번 돈으로 평소 먹고 싶었던 빵을, 아마도 친구들까지 불러서, 실컷 먹었는데 정말로 맛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빵의 맛이 바로 돈의 맛, 그것이 행복의 맛으로 연결되는 구도이다.돈이 있으면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고, 그 소유가 만족감을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간단명료한 구도이다.그렇다면 그가 출연료로 빵을 사먹으면서 느끼던 행복감은 얼마나 오래 갔을까.
일단 빵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나면 빵의 맛은 이전 같지 않게 된다.빵은 빵일 뿐 돈의 맛도 행복의 맛도 아닌 때가 온다.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이론을 빌리자면
‘연소득 7만5,000달러’ 선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카너먼 교수는 돈으로 어느 정도는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당장 렌트비를 못 낼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면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돈 걱정에 잠도 못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러다 봉급이 올라가서 주머니 사정이 조금씩 좋아지면 그만큼 행복감이 높아진다고 그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단 조건이 있다. 연소득 7만5,000 달러까지 만이다.
이 소득은 먹고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상생활을 즐기기에 불편이 없는 수준.이 선을 넘어서면 소득이 늘어도 행복감 증진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그는 파악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돈과 행복은 직결되지 않고, 때로 적이 되기도 한다.처음에 행복을 주던 돈이 왜 그 효력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빵’이 더 이상은 감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돈의 문제는 중독성이다.많은 사람들이 한번 돈맛에 빠지면 헤어나지를 못한다. 돈에 눈이 멀고 만다.
돈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들로 세상은 늘 시끄럽다.이미 넘치게 가진 재벌가 형제들이 돈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 청렴해야할 공직자들이 눈 먼 돈에 홀려 패가망신하는 것,무소유로 평안해야 할 종교인들이 탐욕의 화신이 되는 것 - 돈이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사람이 설 자리에 돈이 주인으로 들어선 것이다. 가치의 전도이다.
10여 년 전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수 천 년 된 고대 보물이 발견된 적이 있다.아닐 쿠마르라는 사람이 버려두었던 땅을 개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제안을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정리해주면 그 대가로 흙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소박한 심성의 마을사람들은 흔쾌히 승낙을 하고 흙을 파내려 갔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금덩어리들이 나온 것이었다.일꾼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주워 담기 시작했고,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총을 들고 와서 약탈하고, 이어 출동한 경찰까지 약탈에 가담했다.그러자 정부가 나서 “고대 유물은 국가소유”라며 보상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평화롭던 마을은 탐욕과 의심, 비방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행복은 돈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돈으로 행복을 얻는 수준을 넘어서면 그 다음 단계의 요소들이 필요하다. 관계와 의미이다.가족 친지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행복감이 생기고,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행복은 사람에 관한 것, 행복의 맛은 사람 사는 맛이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이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다.새해 들어 정신없이 달려온 삶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내가 달려가는 방향은 ‘돈’을 향한 것인가 ‘행복’을 향한 것인가.내가 추구하는 것은 ‘돈의 맛’인가 ‘행복의 맛’인가.
<권정희/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서울 본사 외신부기자 역임/서울대 사대 불어교육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