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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 나오기 전부터, 아니, 어제 저녁부터 우울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전두환이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사진을 보는 것부터 심기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반란군의 수괴로 처벌받은 자가, 아직 살아 나돌아다니는 것으로 부족해 사열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지금 이 시대가 어느 시대로 돌아갔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이 행사가 있었던 날이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 열사의 기일이라는 것, 그리고 87년 군부정권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6.10 항쟁을 앞두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민주화의 역사로서 공인받은 민족사의 한 장을 지금 정권이 어떻게 부인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사에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사진 안에 서 있는 그자들은 바로 오월 광주를 총칼로 짓밟고 그들의 피 위에 집권했던 자들입니다.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민주주의 싹을 짓밟고 결국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단죄의 직전까지 갔다가 스스로 항복선언을 하고 물러났던 자들입니다.
6공 초기 5공비리 청문회, 광주 청문회와 그밖의 상징적이고 법적인 처벌이 끝났다고 해도, 사실 그 죄는 그들의 목숨으로 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이 정권 초기,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유리관 뒤에서 뒷짐 지고 서 있었던 학살의 주범이 국군의 동량을 길러내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사열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있을 수 없는 일'을 넘어서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 정권이 가지고 있는 '병역면제 컴플렉스' 를 함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됐을 때, 그때 제대로 청산 못한 친일의 잔재는 이 땅에 군국주의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며 군사독재를 통한 민주주의적 열망을 억누르며, 민주주의를 원했던 사람들의 피를 마셔가며 지배세력으로서 존재하도록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국민들은 4.19 와 5.18, 그리고 군사독재를 마침내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6.10 민주항쟁으로 그들의 각성을 보여주고, 민주주의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6.10의 정신을 단 한칼에 부인하는 전두환의 군 사열 사진은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시간, 어떤 열매들을 잃었는지를 한 프레임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