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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 날은 집안일로, 또 개인 일로도 바쁩니다. 오늘 아침엔 한의원에 가서 맛사지를 받고 침을 맞았습니다. 오른쪽 손목이 무척 아팠는데, 아마 열쇠로 우체통을 열고 닫고 하는 동작, 즉 '토션'이 힘들어서 생긴 증상일 겁니다.
사실 우체부 일이란 것이 육체적으로 꽤 부담이 가는 일이긴 합니다. 하루에 몇천 계단씩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무거운 걸 들고 나르고 걷는 일이어서 아무래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즐겁게 해 낼 수 있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일 자체는 어떻게 보면 단순노동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견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루 비번일 때 쉬고 그 다음날 나가보면 틀림없이 잘못 배달되었거나 혹은 저 대신 제 라우트에 배달을 해 주는 우체부가 제대로 배달을 못해 놓은 우편물들이 있습니다. 캐리어 테크니션이라고 부르는 직책을 가진 우체부가 제 라우트를 비롯해 총 5개의 라우트를 늘 번갈아가면서 그들의 비번날마다 그 자리를 메꿔주는데, 자기 라우트를 직접 가지고 있는 우체부들만큼의 책임감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쉬고 나서의 다음날은 그런 잘못 배달된 우편물들을 찾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런 작업들이 주민들로 하여금 제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게 만들긴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제가 담당한 라우트에 그만큼 전입 전출자들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고, 또 학교들로 둘러싸인 까닭에 그만큼 학생들의 비율이 많고, 또 시애틀 자체가 유학생들이 많은 도시여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또 유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래저래 우체부들에겐 만만치 않은 여건이 되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라우트를 맡은 정규 우체부들이 제대로 정신차리고 업데이트를 자주 해 주면, 잘못 배달되는 우편물의 비율도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아마, 민주주의라는 가치도 이런 것이 아닌가,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이 가치에 대해 생각한 정권은 몇 되지 않습니다. 비번날, 집안을 청소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청소는 항상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귀찮고, 어질러 놓기가 더 쉽지 청소해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거기다가 애들이 친구들이라도 불러놓으면 애써 청소해 놓아도 그냥 확 다시 치우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청소를 합니다. 그게 보기에도 좋고, 또 청결이라는 것이 반드시 눈에 보이는 그 깨끗함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이나 작은 먼지들을 치워 놓음으로서 우리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이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둔다면 금세 어질러지고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란 가치 역시 혹시 겉으로는 그것의 좋은 점이 확 눈에 띄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안에서 습관처럼 되어버린 수많은 가치판단의 잘못에서 오는 병폐들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청소를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이 작업을 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민들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의 참여는 청소와 같은 것임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힘들고, 왜 내가 해야 하냐고 하지만, 결국은 해야 할 일인 셈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