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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마 인근 파클랜드 오늘(24일) 아침 4명의 경찰이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정확히는 파클랜드라고 불리우는 지역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주민들은 경악하고 있습니다. 시애틀의 한 경관이 총격을 당해 그의 순찰차 안에서 살해당한 것이 채 한 달도 안된 일입니다.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 숨졌습니다. 숨진 경관들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자 3명, 그리고 여경관 1명으로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경관들은 아침 시간 근무교대를 위해 전직 경관이 운영하고 있는 커피숍 안에서 랩탑 작업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20-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인 1명이 갑자기 달려들어와 경관들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이 커피숍 내부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합니다. 이 안엔 다른 손님들과 커피 바리스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금품 강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국에서의 총기의 소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따라 합법이지만, 저는 여기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은 오히려 범죄자들보다도 약한 화력의 무기로 범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 역시 원래 경찰 지망생이었고, 실제로 타코마 경찰국에서 발령 대가중에 우체부가 된 것이어서 때로는 경찰직에 다시한번 응모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오히려 경찰이 되길 포기한 것이 잘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일까요. 지금의 경제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강퍅하고 험악하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요? 미국의 경찰은 솔직히 일반 시민들에게 억압적인 존재이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물론 경찰의 내재적 한계 하나는 이들이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기구라는 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경찰에 대한 제 인식은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한국처럼 가방을 마음대로 뒤지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티켓을 발부하고 금품을 요구하는 그런 악덕 경찰들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요즘 마치 '타겟이 되어' 죽어가는 느낌입니다. 한 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다섯 명의 경찰이 특별히 밝혀지지 않은 동기로 '살해당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표출이라면, 이 사회가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물론 총기에 대한 단속과 총기의 개인 소지를 막아야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 뒤엔 미국에서 가장 큰 로비단체인 '전국라이플협회(NRA)' 가 도사리고 있지요. 숨진 영화배우 찰튼 헤스턴이 회장을 맡기도 했던 이 단체는 총기의 제한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헌법을 들먹이며 막아 왔습니다. 그리고 매수와 로비 등을 총동원하여 총기소유를 제한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막아 왔지요.
사회에 불만인 광인과 총기의 만남이야말로 가장 큰 참극들을 낳아 왔습니다. 콜럼바인과 오리건주에서, 또 워싱턴 대학교 구내에서, 또 몇년 전엔 타코마 몰 백화점 안에서... 수많은 총기 난사사건들은 주민들을 불안에 빠뜨리며, 그들의 방어심리를 자극하며, 더 많은 총기가 '방어용'으로 팔리게 되는 이상한 악순환의 고리를 낳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 최전선에서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경찰들에 대한 계속되는 총격사건 속에서도 총기 제한의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는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 사회를 이렇게 극단으로 몰고가고 있는 원인도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세계에 만연된 박탈감과 상실감입니다. 정당한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 그리고 건강한 자본주의라면 가져야 할 건전한 생산경제로의 환원... 생산경제가 아닌, 금융경제를 통한 투기적 자본의 발호야말로 세상을 더욱 어지럽고 불건전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최고로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형태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참모습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자신의 극단적 모습을 세계로 복사해 전파하며, 우리를 건전함을 찾아볼 수 없는 자본의 매트릭스로, 새로운 형태의 영혼의 공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폭력이 종식되는 사회가 되어야, 이민와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도 걱정이 덜 할 것입니다. 힘들게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강도의 총격으로 불귀의 객이 된 이민자 가장들의 슬픈 이야기를, 여기 사는 우리들은 숱하게 들어왔습니다. 그 피해자가 누구든간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래를 빼앗긴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슬프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 레벨이 올라가는 것처럼, 이젠 경찰들에게까지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한달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워싱턴주에서 다섯 명의 경관이 살해당하는 사태로까지 번졌습니다.
이곳의 로컬 TV 방송국의 웹사이트에 갔더니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중 '이 사건은 틀림없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짓이다' 라고 단정짓는 개념없는 미국인들도 꽤 많았습니다. 이런 단정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다시 폭력을 부릅니다. 만일 이 사건의 용의자가 동양인이었다면 아마'중국인일 것' '월남인일 것' 아니면 '노스 코리안이 그랬을 것' 이라는 황당한 추측으로까지 번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추측들은 해당 인종들에 대한 폭력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틀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타코마 지역 흑인 커뮤니티는 지금쯤 전전긍긍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저는 총기는 분명히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을 가시적으로 확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회의 아픈 면에 대해 무관심하며 넘어가야 할 때, 결국 그 책임은 아무런 죄 없는 우리가 다시 떠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성장'만을 바라보며 복지에는 관심없었던 신자유주의는 계속해 폭력적인 사회를 키울 테니까요.
숨진 경관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