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어달 전 집으로 날아왔던 배심원 출석 통지서, 올것이 왔다 싶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딴 지 벌써 14년 째인데 투표도 꼬박꼬박 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으니, 배심원도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가 되었겠지요.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배심원 후보가 되어 법원으로 출근했고, 변호사가 총기에 관한 의견을 물어봤는데, 여기에 대고 "총기는 반드시 규제돼야 한다. 거의 모든 폭력사건으로 인해 생기는 비극들은 총기소유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당당히 의견을 밝혔고, 이것이 '편견의 가능성'으로 비춰졌는지 이틀만에 배심원 최종후보에서 조금 시원섭섭하게 밀려났습니다.
배심원 후보는 랜덤 셀렉트, 그러니까 무작위 추출로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법원에서 호출을 받습니다. 배심원으로 선정됐다는 통지를 받으면 직장에서는 무조건 연차를 내어줘야 하지만, 특정 사건의 판결 과정이 길어지면 계속해 법원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미국 사법제도의 근간이기도 한 배심원 제도는 12명의 배심원이 '평결'을 내어 재판장에게 제출하고, 이를 근거로 재판장이 형량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평결은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일 배심원 중 한 사람이 반대한다면 이른바 Hung Jury 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면 재판이 말짱 꽝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둘이나 죽이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O.J. 심슨의 경우가 배심원제의 나쁜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변호사가 재판의 주제를 전혀 엉뚱한 쪽으로 이끌어 평결 불일치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예로 들어지곤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원제의 전통은 미국에서 사법 정의를 지키는 데 어느정도 일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젊고 경험이 적은 판사의 사실 판단에 있어서 오판을 줄이고 또한 판사의 업무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여준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일반인들이 상식 차원에서 재판 사안을 듣고 판단을 하고 그 결과를 판사가 참조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그렇겠지요. 그러나, 심슨 사건에서 보듯 피고가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일 경우 뜻밖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미국의 각 주는 주마다 다른 법률이 있어서 위와 같은 배심원의 구성 혹은 결정의 범위를 각각 정하기 때문에 조금씩 다르고 재판장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배심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도 다릅니다. 또 행정구역 단위로도 제도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킹 카운티라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군 단위의 행정구역에서 열리고 있는 항소심에 배심원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배심원단이 평결하게 될 사건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아무튼, 난생 처음의 경험이긴 한데, 조금 부담도 되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원래 제가 신문방송 공부를 마치고 나서, 나중에 새로 하게 된 전공이 크리미널 저스티스, 그러니까 사법행정의 경찰학 쪽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엔 늘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이유로 직장을 빠지는 동안, 직장에서는 제게 연차를 내어줘야만 합니다.
사건의 평결 과정이 길면 길수록 졸지에 계획에도 없던 휴가를 쓰는 셈이지만, 물론 이것도 하나의 일이어서 카운티 정부로부터 일당을 받습니다. 일당은 하루 10달러. 제가 직장에서 받는 봉급 한 시간치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이지만 여기에 운전할 때 드는 비용으로 마일리지로 계산을 해 주는 것이 1마일에 55센트이니, 어쩌면 그게 더 큰 액수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예전에 공부했던 크리미널 저스티스 시스템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배심원 선택 과정에서 판사가 배심원 직에 빠져야 하는 이유를 들으라고 하는데, 지금의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듯 대부분이 파트 타임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처럼 연차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꽤 적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배심원 후보에서 제외되었고, 그 다음엔 자영업자들도 꽤 제외되었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는데, 결국 특정사안에 대한 제 의견을 물어보는 곳에서 걸려 배심원으로서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잃은 것이지요.
갑자기, 영화 빠삐용의 한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영화에서 빠삐용은 꿈을 꿉니다. 누군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빠삐용은 꿈 속에서도 재판정에 서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요. 그러나, 평결하는 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유죄" "유죄" 그리고 그 유죄의 이유는 '시간을 낭비해 버린 죄' 입니다.
글쎄요. 우리가 나중에 어딘가에서, 그것이 살아서가 아니라도, 평결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식의 평결을 받게 될까요? 그리고 그때 나의 배심원은 누구일까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매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 하나만을 위해 열심히 산다면, 어쩌면 그것도 유죄평결을 받을 이유가 되는 건 아닌지... 잠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에겐 '역사의 배심원'으로부터 심판받을 일들도 참 많군요. 지금의 횡행하는 불의들을 눈감아 준 죄 또한 유죄평결을 받을 또하나의 이유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 역사 안에서 깨어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 출근이군요. 아마 내 대신 내 라우트를 돌려준 이가 남겨 놓았을 우편물들이 저를 꽤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중엔 누군가의 배심원 통지서도 들어있을테지요.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