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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민생각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장기표 전 녹색사민당 대표가 지난 13일 느닷없이 ‘국민생각’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더 이상 국민생각 창당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그날 63빌딩에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정치권으로부터 ‘합리적 진보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장 전 대표는 줄곧 한국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 당해온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대정신에 맞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온 인사다.
그가 국민생각 창당과정에 참여한 것도 그런 정당을 만들겠다는 일념에서 비롯됐다.
실제 장기표 전 대표는 “박세일 교수를 비롯한 개혁적 보수 세력과 저를 비롯한 합리적 진보세력이 함께 하는 것이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작은 차이에 대해서는 이견을 조정하며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괴리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전 대표는 “FTA, 재벌개혁, 부자증세 등 주요한 정책에서 저의 철학적 입장까지 접어야 하는 상황 등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함께 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최근 새누리당이 시대정신과 국민의 요구에 따라 보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데 오히려 그보다 오른쪽 주장과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견해들에 대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어 국민생각 창당에 불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장 전 대표의 이 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쇄신’ 정책에 대해 “시대정신과 국민의 요구에 따라 보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정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반면 박세일 대표가 이끄는 국민생각에 대해서는 ‘중도 신당이 아니라 극우 신당’이라고 꼬집었다.
아니나 다를까, 14일 오후 2시경 박세일 대표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국민생각 당사 2층 모 일식집에서 회동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박세일 대표와 이회창 전 대표는 ‘박근혜 불가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회동은 어쩌면 국민생각과 자유선진당의 합당을 위한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자유선진당은 우리나라 정당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있는 정당이고, 국민생각은 줄곧 ‘대중도 정당’을 표방해 왔기 때문이다.
만일 두 사람이 총선 연대를 위해 손을 잡거나, 합당논의가 이뤄진다면 ‘국민생각’은 국민을 상대로 정치사기행각을 벌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국민생각이 진정 중도 정당이라면, ‘합리적 진보 인사’인 장기표 전 대표를 끌어안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재야인사’로 일컬어질 만큼, 현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따라서 원내 인사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정당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즉 현직 의원을 국민생각으로 끌어들일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
반면 이회창 전 대표는 줄곧 현실정치에서 몸담아 왔고, 원내 13석을 거느린(?) 자유선진당의 실세 중 실세다.
단지 원내 의원을 국민생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장 전 대표보다는 이 전 대표가 훨씬 더 효용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박세일 대표가 장 전 대표를 밀어내고, 이 전 대표를 끌어안으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명백한 정치 사기다.
국민생각은 창당 과정에서 줄곧 ‘중도정당’을 표방해 왔고, 그렇게 해서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창당 막바지 상황에서 사실상의 ‘극우정당’과 연대를 논의하거나, 합당을 논의한다면, 그런 정당을 어찌 ‘중도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책이 아니라, 단지 원내 의원의 숫자만 염두에 두고 있는 정당이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고하승/시민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