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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정의를 가르는 잣대가 법의 판결이나 상식이 아니고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이고 우파냐 좌파냐의 문제로 변질 되어가고 있다. 정의가 꼭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정의는 상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보수의 정의와 진보의 정의가 다르고 우파의 정의와 좌파의 정의가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개인의 사고나 철학, 이념 등이 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상대를 비난하면서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정의가 혼동이 될 때 발생되는 가치관의 혼란이나 시각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혼돈의 시대에 처하게 됨은 물론이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증오와 갈등으로 사회폭력이 우려되고 사회는 양편으로 나뉘어 확실한 편 가르기가 진행될 것이고 그것은 가족관계나 인간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를 확립하는 일이 우리사회에서 제일 필요한 것으로 본다.
불법을 저지르는 일은 절대로 정의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한다. 법치국가에서 법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다. 법치국가를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법치국가에서 살 자격이 없으므로 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추방해야 마땅하다. 그런 사회가 없을 것이므로 죄를 엄하게 묻는 절차가 필요하리라 본다.
법이 완전하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상식의 선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상식이라고 함은 보통의 교육을 받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적용해야한다.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보다는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진보든 보수든 상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상식적인 사람이고 죄를 짓고도 피해 다니면서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약한 사람을 마구 때려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몰상식한 사람이다. 재벌기업이 군소업자가 운영하는 직종에 진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진출하지 말아야 옳은 일인지에 대한 답은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답이 나온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곽노현 교육감이 2억원을 후보를 사퇴한 박명기 교수에게 주었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옳지 않은 일인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박희태 국회의장이 대표경선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돈을 건네주었던지 비서진이 돈을 건넸던지 하는 사실에 박의장이 책임을 져야하는 지 책임이 없는 일인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을 무차별 폭행하는 교사의 행위가 옳은 일인지 아닌지, 학생이 선생님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국회를 모독하는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심판을 해야 한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금품수수에 대해서 엄중하게 단죄해야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몰상식을 두둔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다.
방송에서도 신문에서도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못한다. 선생님도 학생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원로어른들도 젊은 세대들에게 잘잘못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꺼린다. 누구도 몸을 사리고 인기영합주의에 빠져서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큰일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가 선배, 후배의 구분이 없고 어른, 아이의 구분이 없는 몰상식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성년자가 성인의 행태를 일찍 답습한다든지 청소년이 노인을 폭행한다든지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힌다든지 무리를 지어서 한사람을 따돌리는 행위 등 상식에 맞지 않는 일들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법과 상식이 파괴되어 가는데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보다도 선동하고 박수를 보내는 일들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공동체의 상식을 존중하고 따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후대가 피곤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정의가 사라지고 상식이 깨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병익: 정치평론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