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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仰瞻羲唐,邈然遠矣。近詠臺閣,顧探增懷。聊於曖昧之中,思乎瑩拂之道。
옛날 복희씨(伏羲氏)나 요(堯)임금의 시대를 그리워하나 너무나 먼 옛일이다.오늘 난정(蘭亭)에서 아회(雅會)를 가졌으나 현실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가니 황혼이 짙어가는 지금, 영불(瑩拂)의 도(道)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손작(孫綽)이 이 후서(後序)를 쓰기 시작하였을 때는 난정(蘭亭)의 모임이 끝나가는 저녁 무렵이었던 모양입니다.그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그때를 ‘애매지중(曖昧之中)’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TV의 한 개그프로에서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애매(曖昧)’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만,이 단어가 1700년 전에도 사용된 것을 보면 새삼 한자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중 <원유(遠遊)>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들수 있습니다.
時曖曃其曭莽兮(시애태기당망혜)
그때는 어둑어둑해져 어두워지니
여기서 사용된 ‘희미하여 어둡다’란 의미의 ‘애태(曖曃)’란 표현은 이후,장형(張衡)의 <사현부(思玄賦)>에서 ‘암애(暗曖)’,그리고 ‘엄애(晻曖)’란 표현으로 바뀌고,그리고 손작(孫綽)의 이 글에서 ‘애매(曖昧)’란 표현으로 재탄생되게 됩니다.
그는 현실(臺閣)과 이상(羲唐)사이의 간격을 각각 ‘근(近)’과 ‘원(遠)’으로 대비시켜 표현한 뒤, 그날 난정(蘭亭)의 모임에서 자신들의 시(詩)를 짓고 하는 행위를,요순(堯舜)시대 이상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영불(瑩拂)의 도(道)’,즉 ‘갈고 닦아내어 진리를 드러내는’ 구도자(求道者)의 행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갈고 닦아내어 진리를 드러낸다’는 의미의 ‘영불(瑩拂)’이란 단어 또한 손작(孫綽)이 이 글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입니다.(瑩拂: 磨拭,使光潔。比喻闡明事理,去惑顯真)
4. 暮春之始,禊於南澗之濱,高領千尋,長湖萬頃,乃籍芳草,鑑清流,覽卉物,觀魚鳥,具類同榮,資生咸暢。
3월초, 남쪽 골짜기 물가에서 계사(禊事)를 올리니,높은 봉우리는 천심(千尋)이요, 드넓은 물은 만경(萬頃)이라.이에 향기로운 풀을 깔게 삼고, 맑은 냇물을 거울삼아 풀과 나무, 물고기와 새들을 구경하니, 만물(萬物)이 함께 번영(繁榮)하여 생명력이 온 세상 가득하도다.
이 단락에서 손작(孫綽)은 봄철 난정(蘭亭) 경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자연의 경관을 표현하는 말을 빌어 이날 연회의 주인공인 왕희지(王羲之)의 글 내용을 재차 반복해 줌으로서 주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왕희지(王羲之) 서문(序文)의 ‘暮春之初會於會稽山陰之蘭亭修禊事也 (3월(三月)의 초승에 회계(會稽) 산음현(山陰縣)의 난정(蘭亭)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였다.)’란 구절을 ‘暮春之始,禊於南澗之濱
(3월초, 남쪽 골짜기 물가에서 계사(禊事)를 올리니)’로 바꾸어 표현하고,‘有崇山峻嶺 ...又有清流激湍(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가 있고, ...또한 맑은 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있어)’을 ‘高領千尋,長湖萬頃(높은 봉우리는 천심(千尋)이요,드넓은 물은 만경(萬頃)이라.)’이란 표현으로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왕희지(王羲之) 서문(序文)의 ‘品類之盛(만물의 풍성함)’이란 표현을 ‘具類同榮,資生咸暢(만물(萬物)이 함께 번영(繁榮)하여 생명력이 온 세상 가득하도다)’라고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5. 於是和以醇醪,齊以達觀,快然兀矣,焉復覺鵬鷃之二物哉!
이때에 진한 술을 곁들이니, 달관(達觀)의 경지에 들어선 듯,홀연히 쾌연(快然)하니, 어찌 붕새와 메추리를 부질없이 비교하랴?
이 단락은 난정(蘭亭) 연회에서 술을 즐긴 뒤 솟아오르는 도도한 취흥을 표현한 글입니다만, 역시 그 속 내용은 난정(蘭亭)의 주역 중 한사람인 사안(謝安)이 이날 지은 시(詩)에 대한 손작(孫綽)의 화답의 표현입니다.
사안(謝安)의 오언시(五言詩)중,醇醪陶丹府(순료도단부) 농익은 막걸리를 마시니 마치 요임금의 나라에 있는 것 같아,兀若遊羲唐(올약유희당) 홀연히 태평성대에 노니는데,萬殊混一象(만수혼일상) 세상 만물은 만 가지로 다르지만 본질은 모두 한 물상이니,安復覺彭殤(안복각팽상) 어찌 팽조(彭祖)과 상자(殤子)를 다시 비교하리오.란 구절들을 다시금 표현한 것인데,‘醇醪陶丹府(순료도단부) 兀若遊羲唐(올약유희당)’의 구절을 ‘和以醇醪(화이순료),齊以達觀(제이달관),快然兀矣(쾌연올의)’로 표현해 내고,또한‘팽조(彭祖)와 상자(殤子)’를 나타내는 ‘팽상(彭殤)’이란 단어를 역시 같은 <장자(莊子)>상 표현인‘붕새와 메추리’를 나타내는 ‘붕안(鵬鷃)’으로 바꾸어 사안(謝安)의 시흥(詩興)에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6. 耀靈促轡,急景西邁,樂與時去,悲亦系之。往復推移,新故相換,今日之跡,明復陳矣, 原詩人之致興,諒歌詠之有繇。
태양의 고삐를 잡아 갈 길을 재촉하니 햇살은 급히 서쪽으로 넘어간다.즐거움도 시간 따라 떠나가면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슬픔뿐...가고 오고 또 옮기고, 새것과 옛것이 서로 바뀌듯 오늘의 자취도 내일이 되면 진부한 옛자취가 되고 마노니, 원래 시인이라면 이러한 감흥(感興)에 도달한 이상,살펴 노래를 짓게 됨은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저는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 ‘해가 넘어 간다’는 것을 표현한 ‘耀靈促轡(요령촉비),急景西邁(급경서매)’란 이 구절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태양을 ‘빛의 정령’이란 의미의 ‘요령(耀靈)’이란 단어로 처음 표현한 글은 초사(楚辭)인데,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중 <원유(遠遊)>에 다음의 구절이 나옵니다.
耀靈曄而西征(요령엽이서정) 태양(耀靈)이 마지막 빛을 발하여 서쪽으로 넘어간다.손작(孫綽)은 바로 이 구절을 ‘耀靈促轡(요령촉비),急景西邁(급경서매)’란 멋있는 표현으로 재해석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글 내용인 ‘오늘의 즐거움도 금방 옛 자취로 바뀌니 어찌 감회를 느껴 글을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란 부분은 또한 왕희지(王羲之)의 서문(序文)중,向之所欣(향지소흔) 俛仰之間(면앙지간) 以為陳迹(이위진적) 猶不能不以之興懐(유불능불이지흥회) 지난날에 즐겼던 일이 잠깐 사이에 옛 자취가 되어 버리니,감회가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음이라 란 표현을 더욱 멋있게 변주(變奏)한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이어지는 구절은 마지막 단락입니다.
7. 文多不載,大略如此,所賦詩亦裁而綴之如前,四言五言焉。
싣지 못한 글이 많지만, 대강은 이와 같다. 시(詩)도 엮어서 싣는다.예컨대 4언 시와 5언 시를 앞에 실은 것처럼.이로서, 손작(孫綽)의 난정(蘭亭) 후서(後序)는 마무리 됩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제일가는 문장가로 일컬어지던 손작(孫綽)의 글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당시 난정연회의 주연이었던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의 글에 대한 화답에 지나치게 치중한 면이 있어,그 빼어난 문장에도 불구하고 왕희지(王羲之)가 지은 난정서(蘭亭序)보다 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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