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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차기 총선에 석패율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합의를 했다고 한다. 지금 두 당이 정치개혁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석패율제도 보다는 정치신인의 등장을 어렵게 하는 선거의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비례대표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아깝게 낙선한 사람은 낙선한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갖고 4년 후에 재도전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석패율제도는 매우 그럴듯한 제도인 것처럼 보이나 인지도가 높은 현역의원이 유리한 제도인 것이다.
국민들이 기존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은 이 시점에서는 현역의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과 자격미달인 현역의원들을 배제하고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본다. 돈과 조직은 없지만 진정성과 애국심이 높은 사회 각 부분의 리더들을 영입하고 당의 힘을 실어줘서 정치에 입문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석패율제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선 한 정당이 특정지역에서 의석을 싹쓸이하는 현상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거대 정당과 기성 정치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말하고 지명도 높은 인사들의 연명용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한다. 이런 생각들은 자유선진당과 구 민주노동당 같은 군소정당에서 애초부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었다.
석패율제에 대한 논의가 당리당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서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에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나뉘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어느 정치학 교수는 "석패율제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맞지만 과연 최악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 아닌가 싶다"면서 "당장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17대에 정당투표 도입 이후 19대에서 한 발 더 진척된 안을 만들어놓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정치학 교수는 "석패율제가 무슨 악의 근원이라곤 보진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에선 안 그래도 비례대표에 대한 정서가 좋지 않은데 이런 식이면 전문가와 소수자를 위한 할당적 성격이 더 탈각될 수 있다. 그래서 석패율제는 도입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는 트위터에서 "석패율제는 한나라당 호남진출, 수도권 중진 기사회생, 영남 야권연대 저해, 비례취지 퇴색시킵니다. 합의 깨야 합니다"라고 반발했다. 또 "석패율제는 한나라당 수도권 중진과 호남의원을 위한 제도" 라고도 말하고 "민주당이 야권연대 중시하면 한나라당과 합의 깨야 맞죠"라며 "저는 최선은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차악은 현행, 최악은 석패율제라 봅니다" 라고 말하면서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결국은 석패율제도가 당리당략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이다. 군소정당은 반대, 대정당은 찬성의 구도가 명확한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말한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통합진보당이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세를 넓혀나가는데 유리한 제도가 틀림없다.
그러나 정당명부제는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당의 지도부가 임의로 하는 것이므로 지도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도부가 당의 기여도나 동류의식을 가진 사람을 임의로 추천하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양당제가 자리 잡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정당명부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정당명부제는 다당제 정당에서 주로 시행하는 것이므로 우리나라가 양당제로 갈 것인지 다당제로 갈 것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수렴이 중요하다. 현재까지는 양당제를 선호하는 행태를 보여 왔는데 하루아침에 정당명부제로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비례대표가 충분히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도 1인 2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1표는 후보에게 또 1표는 정당에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악의 투표행태라고 말할 수 없다. 정당의 이해가 걸린 투표제도는 심사숙고해야하고 여론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선호하는 군소정당들은 지역구의원을 배출하기 힘든 정당이다. 그러니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지역에서 1~2석을 건지려는 몸부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선거에 의한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정당이 소수야당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 같다.
또한 과반의석을 노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포기하면서 군소정당의 주장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과반의석을 얻는 정당이 나오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석패율과 정당명부제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아직은 적합다고 보지 않는다. 당의 이익에 따라서 각 정당이 주장하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병익: 정치평론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