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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그렇게 뻔뻔스럽고 과감하게 미디어법을 통과시키고 또 정부의 책임자들은 불법으로 통과시킨법령을 헌법재판소의 결과도 기다리지도 않고 그 즉시 법령을 발효시켜 행정행위를 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위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정치인이나 정부관료들은 국민의 공복이라고 정의 짓는 민주주의를 국체로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2천 몇 백년 전에도 하지 말라는 행동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까?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라고 떠들지만 그들의 머리속에는 진시황제와 같은 절대왕정시대의 정치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같은 생각의 헌법 재판관 왈, 법은 불법으로 통과되었지만 법률로써의 효력은 발휘한다는 인류사에 정말로 획기적인 명판결을 내 놓았다. 대통령이 그러니 권력주변에 기생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래서인가? 헌법재판관 같은 무식한 사람들의 눈에는 별것도 아니겠지만 예수가 태어나기 전 100년 전의 절대왕조 시대에도 곡학아세의 폐해를 걱정해서 젊은이를 훈계한 일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두태후(竇太后)가 <노자(老子)> 읽기를 즐겨했다. 어느 날 원고생을 불러 노자를 읽어 그의 학설을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원고생이 대답했다.
“ 이 책의 내용은 집안의 잡인이나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두태후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 어떻게 하면 너와 같이 시서(詩書)나 읊조리고 다니는 유가 놈을 사공(司空)에게 넘겨 성단형(城旦刑)에 처한다는 문서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공은 형벌을 관장하는 관리의 장이고 성단형은 성을 쌓는 노역에 끌려가 4년 동안 복역하는 형벌이다. 두태후는 원고생을 돼지우리에 던져 넣고 맷돼지를 잡도록 했다.
경제는 두태후가 크게 화를 낸 것은 원고생이 직언을 올렸기 때문이고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는 원고생에게 예리한 병기를 주어 우리 속의 맷돼지를 찌르도록 했다. 원고생이 경제가 준 병기로 한 번 찔러 맷돼지의 심장을 적중시키자 맷돼지는 넘어져 죽었다. 태후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다른 죄로 추궁할 이유를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원고생을 방면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경제는 원고생이 청렴하고 정직하다고 해서 청하왕(淸河王) 유방승(劉方承)의 태부로 삼았다. 청하는 거록(鉅鹿)에 설치한 번국(藩國)이고 유방승은 경제의 아들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금상께서 즉위한 바로 그 해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하고 그 자리에 인품과 덕을 갖춘 현량(賢良)들을 전국에서 초치할 때 원고생도 같이 조정에 들어왔다. 그때 아부를 일삼던 유생들이 모두 원고생을 질시하여 말했다.
“ 원고생은 이미 늙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원고생의 나이는 이미 90살이 넘었었다. 그가 현량으로 불려나갈 때 함께 포함되어 경사에 올라온 설읍(薛邑) 출신의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을 질시했던 유생들 편을 들었다가 원고생이 노려보자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 공손홍에게 원고생이 말했다.
“ 공손 선생, 일을 할 때는 필히 배운 것을 똑바로 적용하여 일을 논해야지, 배운 것을 비틀어 세속에 영합하면 안 될 것이오. (曲學阿世)”
공손홍은 후에 영달하여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가 제왕(齊王)의 옥사에 연루되어 한무제에게 주살되었다. 이 일이 있는 후부터는 제나라 사람들이 시경을 강론할 때 모두 원고생의 주해를 따랐다. 후에 시경을 연구해서 현달하게 된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원고생의 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