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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의사 등 부유층들이 중심이 되어 부자세를 다시 부과해 달라는 청원을 냈다고 합니다. 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이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며, 부유세 도입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충분한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구체적 방안으로 50만 유로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 220만명이 올해와 내년 5%의 재산세를 내면 1천억 유로의 세수가 발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얼마전 미국에서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이 중심이 되어 상속세를 다시 과거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한바 있습니다. 서구의 부자들이 자신들이 사회에 대해 어떤 식으로 공헌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합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정권의 많은 사람들과, 이 정권으로부터 '진정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아닙니까? 성경 읽으며 이 구절은 참 쉽게 접했을텐데, 어째 그렇게 성경 한 구절 읽지 못한 사람들처럼 구는지에 대해 참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나눔은 사회를 풍요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독점은 사회를 빈곤하게 만듭니다. 독일 부자들의 부유세 청원운동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사실, 제가 살고 있는 킹 카운티의 경우, 집에 대한 재산세는 솔직히 좀 과하다 할 정도인데, 집 한채 달랑 가지고 있는 저 역시 연간 3천 126달러의 재산세를 내고 있습니다. 제 집은 부동산 전문 사이트인 zillow.com 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경기변화에 따라 한참 과열이었을 때 31만달러까지 올라갔고, 주택경기가 최악이었을 당시 23만 6천달러까지 떨어졌었습니다. 카운티 정부에서 감정을 하고 세금을 매기는데, 이것이 매년 달라지고, 여기에 따라 세금을 매기지만 이곳 주민들은 불만이 있다 해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세금은 수입에 대한 연방세 따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순수한 '재산평가에 대한' 세금입니다. 최악의 경우엔 세금을 못 내 집을 차압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버는 수입이 적을 경우 부동산 세금은 경감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탈세에 대해서는 부의 크기에 상관없이 무거운 형벌을 매기는 이곳의 사회에서, 자신의 수입까지 속여가며 탈세를 하기엔 사회의 시각이 그런 이들을 정말로 냉대하고 비겁하게 여기고 있어서, 세금을 속인다는 것은 어지간한 뻔뻔함이 아니면 안 되는 일입니다.
여기에 부자들은 그 부의 크기에 따라 차등 비율의 세율을 냅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그나마 그것이 유럽보다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편이지만, 그래도 '부자'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철학들이 있고, 이들의 철학이 지금 이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유세를 걷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돼 왔습니다. 이 부유세는 직장을 완전히 잃고 실업기간이 길어져 실업수당까지도 더이상 수령할 수 없는 이들에게 생계비로 지급돼 왔습니다. 한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이런 조금은 '강제된 나눔'은 사회정의의 실천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가장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조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독일의 부자들도 그들의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정부 출범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세금들이 '성장 동력 제고' 라는 핑계 하에 삭감됐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부유층을 얼마나 더 배불려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구조화된 불평등은 결국 극단적인 한탕주의, 그리고 일 해봤자 소용없다는 허무주의,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의 이상적인 표출로까지 나타나고, 부익부 빈익빈의 가속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끼는 대중은 그들의 불만을 범죄로 나타내든지, 아니면 조직적이든 비조직적이든 간에 그 사회 안에서 잠재적 불안요소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정권의 정책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의 거개가 부유층에게만 특권을 더해 주는 것 밖에 없었던 까닭에, 서구의 이런 움직임들과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의 서민층에게는 '부동산'이나 '주식'같은,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어떤 착각 같은 것을 가져다주는 마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고, 그것을 보며 못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착시 현상을 심어주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펀더멘털 안에서 성장 위주의 정책이 줄 수 있는 약빨이란 것이 과연 얼마나 갈 지는 뻔합니다. 세계 제일의 소비시장인 미국이 조금씩 풀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크기엔 부족하기 턱이 없고, 가장 중요한 지표인 실업률까지 계속 상승하고 있는 판입니다. 이걸 보면서도 성장에 올인하겠다면, 그것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바보거나, 협잡이거나.
이런 상황에서, 가진 자들이 더 가지겠다고 하는 것을 용인하는 정부,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쥐어짜는 정부가 향하는 길은 결국 파탄만을 더 앞당길 뿐입니다. 진정 실용주의적이고 사회의 안정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자기들에게 불리한 말 하는 사람들을 공직과 직장에서 물러나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언을 받아들이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지금까지 '이윤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사람'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이윤 확보를 위해 대규모 감원을 벌여 왔고, 이제 경기 악화로 그 부메랑을 맞게 되자 정신차리고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이 때,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으니, 멀리서 그걸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정말 '친서민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부자들이 알아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부담을 늘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하는 정책입니다. 그나마 그 비율도 이곳의 작은 행정구역에서 걷는 세금보다도 적은 종부세마저도 철폐해 부유층을 옹호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정신줄 놨구나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