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브랜드위(위원장 어윤대)는 현재 추진중인 `대한민국 정부 상징 체계 개편' 작업이 완료되면 무궁화 모양의 정부 로고는 완전히 폐지되고, 정부 부처별로 다른 로고도 새 로고로 통일되거나 병행 사용될 것이라고 18일 밝혔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무궁화(無窮花:木槿花)가 많아 근역이라고 불렀으며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한단고기]에 보면 단군천황들이 자주 심는 나무가 한화(무궁화)였다. 고로 단군3조선 중 번조선 영역에 속했던 양자강지역에 무궁화가 많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한민족 고대사의 진실을 기록하고 있는 정통사서[한단고기]'단군세기'편에는 무궁화가 한화로 기록되어 있으며 수 없이 많이 심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6세 단군 위나 재위58년 (十六世 檀君 尉那 在位五十八年) 未元年 戊戌二十八年會九桓諸汗于寧古塔祭三神上帝配桓因桓雄蚩尤及檀君王儉而亨之五日大宴興衆明燈守夜唱經踏庭一邊列炬一邊瓊舞濟唱愛桓歌愛桓卽古神歌之類也先人指桓花而不名直曰花愛桓之歌有云山有花山有花去年種萬樹今年種萬樹春來不咸花萬紅有事天神樂太平
신미 원년(B.C.1610) 무술 28년(B.C.1583), 9한의 여러 한(汗칸)들이 영고탑(寧古塔)에 모여 삼신(三神)과 상제에게 제사지냈으니 한인, 한웅, 치우 및 단군왕검을 모시었다. 닷새 동안 크게 백성과 더불어 연회를 베풀고 불을 밝혀 밤을 지새며 경을 외우고 마당 밟기를 하였다. 한쪽은 횃불을 나란히 하고 또 한쪽은 둥글게 모여 서서 춤을 추며 애한(愛桓)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애한이란 곧 옛날 신에게 올리는 노래의 종류를 말함이다. 선인들은 한화(桓花)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다만 꽃이라고만 하였다. 애한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산에는 꽃이 있네. 산에는 꽃이 피네. 지난해 만 그루 심고 올해 또 만 그루 심었지. 불함산에 봄이 오면 온 산엔 붉은 빛 천신을 섬기고 태평을 즐긴다네"
중국과 그 주변 국가의 지리·풍속·산물 등에 대해 쓴 〈산해경〉 해외동경군자국조(海外東經君子國條)에 보면 "군자국은 대인국(大人國. 위치는 한반도중부지역으로 추정) 북쪽(한반도 북부지역=북한)에 있는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잡아 생활한다. 2마리의 큰 호랑이를 옆에 두고 사냥을 좋아하며 다투지 않는다. 무궁화라는 나무가 자라는데 아침에 꽃잎이 피었다가 저녁에 꽃잎을 접는다"고 실려 있다. 우리나라 사람 스스로가 이를 사용한 것은 신라말의 최치원을 통해서였다. 최치원은 그의 글인 <사불허북국거상표 謝不許北國居上表>에서 신라는 '근화향'(槿花鄕)이라 하여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로 미루어 일찍부터 우리나라가 명확히 무궁화의 나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대한민국 민족정신을 담고 있는 무궁화나무을 많이 없애 버리고 벚꽃을 많이 심었다. 이러할찐대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가 정부의 로고임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무궁화 로고를 폐지하겠다는 이명박정부는 자신들 스스로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고 일본을 대변하는 정부임을 인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무궁화 로고를 폐지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마땅히 항의하고 분노해햐 할 일이라고 본다. 무궁화로고안에 정부부처이름을 선명히 적으면 되는 것을 가지고 없애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것도 국가브랜드위원장이 그 딴 소리나 해대니 대한민국 국가브랜드의 상징을 스스로 부정하겠다는 작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명박정부는 일본열도로 추방당하기 전에 취소하고 무궁화로고사용을 전제로 정부부처이름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무궁화를 지우기 위해서 별짓을 다하는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게 하는 이명박 정부의 작태에 분노가 치민다.
[자료]대한민국 나라꽃 - 무궁화
그 많던 무궁화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민족은 어려울수록 단결하고 협력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닌 애국심이 강한 순결한 민족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양극화에 따른 여러 갈등요인이 파생되면서 애국심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애국심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며, 국민 스스로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기도록 하는 국가적,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랐을까?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꽃이 있다. 그 가운데서 무궁화가 왜 우리나라 나라꽃이 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또 언제부터 이 꽃이 우리나라 나라꽃이 되었는지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옛 기록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꽤 확실한 기록이 몇몇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4200년 전에 쓴 고대 지리책 ‘산해경(山海經)’ 아홉 번째 책 ‘해외동경(海外東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자의 나라가 대인국(위치는 한반도 중부지역) 북쪽(북한지역)에 있는데, 그들은 옷을 깔끔히 입고, 칼을 차고, 짐승을 먹이고,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며,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한다. 또 그 나라에는 ‘훈화초(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는 우리나라를 지칭한다. 그리고 ‘훈화초’는 지금의 “무궁화”를 말하고요. 단군조선의 건국 시기를 보통 기원전 2333년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4332년 전 우리나라 곳곳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월부터 8월까지 피는 아름다운 꽃... 무궁화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는 6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8월 15일 광복절까지 100일 동안 특히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꽃이 아름다워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지에서는 정원·학교·도로변·공원 등 조경용과 분재용 및 생울타리용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진흥청이 무궁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생육이 강하고 꽃피는 기간이 긴 다양한 꽃 색의 무궁화 품종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또한, 화분에서 키울수 있는 방법도 개발함으로써 가정과 학교 등지에서 쉽게 무궁화를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제의 참혹한 시련을 딛고 일어선 ‘무궁화’
나라꽃인 아름다운 무궁화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무궁화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 무궁화를 죄다 뽑아내고 불살랐다고 한다. 그때 만주, 상하이, 미국, 유럽으로 간 독립운동가들이 나라 정신의 정신으로 무궁화를 내세우자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에 있는 무궁화를 보이는 대로 불 태워 버리고 뽑아 버렸다. 그리고 무궁화를 “눈에 피 꽃”이라 하여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서고 눈병이 난다고 했고, “부스럼 꽃”이라 하여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예쁘지도 않고 진딧물만 꼬이는 “진딧물 꽃”이라 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느니, “무궁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먼 다”느니 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 스스로 무궁화를 애써 미워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여 무궁화를 뽑아 오는 학생에게는 상까지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가 이렇게 탄압을 하면 할수록 무궁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