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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 문화제 최고 장면 연출한 정대봉 화백의 쌍용
풍성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문턱을 넘어서는 2009년 10월9일(금) 오후 18:00시 경기도 제2청사가 위치한 의정부시 금오동 청사앞 광장에는 수많은 의정부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44만 인구로 급성장한 수도권 동북부 행정,교육,산업,교통중심 행복도시 의정부시 승격 46주년을 기념하는 제38회 시민의날 기념식과 제24회 회룡문화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는 오전10시 의정부 문화원 문화학교 주관으로 동아리 작품 종합 전시회가 의정부 예술의 전당 전시장에서 열린것을 시작으로 제2청사앞 잔디광장을 무대로 전통놀이 체험과 전통문화 공연을 주요내용으로 전통체험 마당과 회룡난장이 오후1시부터 6시까지 계속되었다.
이어 오후 6시부터 밤10시까지 제2청사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시민의날 기념식및 회룡문화제 개막식과 개막 퍼포먼스,회룡 무예극,가수 화춘화,설운도,장우,조항조,김수희,박주희등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동한 축하공연,불꽃놀이등 본행사가 성대하게 개최 되었다. 이날 진행된 본행사는 인기가수들이 출연한 축하공연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정작 시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탄성을 터트리게 만든 최고의 장면은 용(龍) 그림에 관한한 국내는 물론 세계 제1인자로 정평이 나있을만큼 인신의 경지에 이른 일필휘지,일필용(一筆龍)의 대가인 정대봉(鄭大鳳) 화백이 연출한 쌍룡(雙龍) 퍼포먼스였다.
이날 정화백이 일필휘지로 탄생시킨 2마리의 용은 6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대작으로 하늘을 향해 욱일승천,솟구쳐 날아 오르는 비룡(飛龍)이었다. 먹을 잔뜩 묻힌 큰붓을 들고 태산처럼 장중한 모습으로 비단천위에 서서 온몸의 기(氣)를 붓끝에 모은후 몸과 마음과 붓이 삼위일체가 되어 토해내는 쌍룡이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은 넋을 잃었고 이어 마지막 여의주를 입에 물려 무대 양쪽에 우뚝 세워지자 환호와 박수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정말 이날 정화백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초대형 쌍룡은 살아있는 용 그자체 였다. 선명하게 비늘을 드러내며 천지를 휘감을듯 꿈틀대는 용틀임을하며 승천하는 정화백의 쌍룡이 없었다면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 이성계를 마중나온 태종과 문무백관,백성들이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함께 새로운 용의 탄생을 축하하던 역사적 장면을 기념하는 회룡문화제도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시민들은 입을 모았다.
영혼이 실린 정화백의 용,천하제일
이처럼 정대봉 화백이 오늘날 용그림에 관한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최고의 대가의 위상을 굳히게 된것은 지난 64년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용을 생각하고 붓끝에 영혼과 기를 불어 넣어 열정을 다해 몸과 마음을 바쳐 전력투구하는 자세로 작품에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다.
봉용(鳳龍),유천(遊川),두아호를 쓰는 정화백은 자연 친화적이고 해학적인 소나무,학,개구리등을 즐겨 그리지만 용을 빼놓고는 '정대봉'이름 석자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용을 사랑하고 용그림에 집착한다. 용에 살고 용에 죽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만큼 용 외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희를 훌쩍 넘긴 칠십 중반의 고령임에도 붓놀림에 거침이 없고 열정과 패기는 젊은이들을 능가한다.
정화백은 "용을 그릴때는 숨을 들이키면 기가 흩어지고 맥이 끊어져 용이 아니라 뱀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숨을 쉬지 않고 일필용을 그린다"면서 비록 혼신을 기울인 작품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사심이 들어갔거나 영혼이 실리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면 가차없이 구겨 없애 버릴만큼 '정신일도 하사불성"에 입각한 작품세계를 견지하기 때문에 영혼이 담긴 작품 한점을 위해 수백장을 그릴때가 있었을 정도로 작가정신이 투철하다.
그러면서도 정화백은 '용그림의 대가' '국내 제1인자' '천하제일' 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 손을 내젓는다. 정화백은 :"제자신을 대가라고 생각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예술의 경지는 끝이 없습니다. 용을 그리고 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때까지 혼신을 다해 갈고 닦고 연마하겠다는 초심으로 작품에 임할 따름'이라는 말로 겸손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정화백의 겸손함에도 불구하고 용에 관한한 국내 제1인자 라는 위상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청와대,해병대 사령부등 주요 관공서에 빠짐없이 정화백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용이 걸려 있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재계 주요인사들이 선생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서 잘알 수 있다.
육해공을 자유자재하는 신령한 용 그리기 64년 외길인생
정화백의 용그림은 정화백이 평소 용을 그린다기 보다 "용을 쓴다"고 말하는 데서 알수 있듯이 독특한 정화백 특유의 용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되기까지 정화백은 스승이 따로 없었다. 정화백 자신이 스승이고 학생이었다. 독학으로 자기만의 독보적인 그림과 서예의 합일(合一) 이라는 서화용(書畵龍) 작품세계로 일가를 이룬것이다.
정대봉 화백을 오늘날 국내 최고의 용그림 대가의 위치에 오르게 만들어준 계기는 정화백이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고 한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정화백은 당시 서부 경남지역 최고의 한학자로 널리 알려진 외숙부 서대철 선생으로 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부잣집 대문에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비방으로 써붙여 놓았던 용(龍), 호(虎)글씨를 보고 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였다고 한다.
정화백은 어렸을때 개구쟁이였으면서도 화투짝을 그대로 그릴만큼 그림에 관한한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지라 대문과 방문위에 붙어있던 액운을 몰아 내준다는 용과 호랑이 부적을 볼때마다 재미삼아 따라 그린게 마을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그림솜씨가 알려지면서 상여옆에 붙이는 용을 한지에 그려 주기 시작하던게 해가 가면서 비록 실제 본적은 없지만 상상속의 용이 그려졌고 나아가 용틀임하며 욱일승천하는 살아움직이는 비룡,태산처럼 장중한 품위와 격조를 갖춘 고귀한 용등 수천가지 형태의 자신만의 독보적인 용을 탄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정화백이 60년넘게 '용'에 매달리게 된데는 이와같이 어렸을적 용을 접하게 된 계기가 강렬한탓도 있었지만 옛날부터 상상속의 동물이긴 하지만 땅과 바다,하늘 즉 육해공(陸海空)에 자유자재하면서 바람과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모든 동물의 최고인 영험하고 상서로운 용그림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하나됨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용은 권력,벽사,길상의 상징으로 순수 우리말로 '미르'라고 불리는 용에 대해 정화백은 "용은 고대 중국인이 상상속의 동물로 지어낸 것으로 '삼정구사설(三停九似設)'에 의하면 십이지신을 포함 여러동물의 형태를 한몸에 갖춘 신성한 동물입니다. 용의 뿔은 사슴의 뿔과 같고 코는 돼지코에 머리는 낙타,눈은 토끼,이마는 뱀,배는 이무기,비늘은 물고기,귀는 소를 닮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며 제왕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왕이 앉는 자리를 용상,왕의 얼굴을 용안 ,왕이 즉위하는것을 용비(龍飛) 라 하는것은 여기서 비롯되었지요. 물론 곤룡포나 휘장에 발톱이 다섯이면 황제,네개면 왕,세개면 왕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등급을 나누기도 했지만 권세와 풍요를 가져다 주는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왕가뿐아니라 일반 백성 사이에서도 입신출세와 관련한 등룡문,출세와 재물이 들어 온다는 용꿈,큰 인물을 낳는다는 태몽에서 보듯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 준다하여 도자기,벼루등 각종 문방,생활제품에 길상으로 넣는다는 점에서 신성한 영물이고 특히 구름을 뚷고 승천하여 풍운조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용은 최고입니다."
이러한 용을 직접 창안한 몽유도법에 의거 서예로 써내려 그림으로 승화시킨 용그림으로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경이로움을 통해 '무릉도원'같은 이상향의 지상낙원을 구현해 보고 싶어 용그림 외길을 고집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투철한 작